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참모의 입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독 정부 대변인의 말실수로 시작됐다. 그는 “여행 허가에 관한 규제가 완화된다”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베를린 장벽을 포함해 모든 국경에서 출국이 인정된다”고 잘못 말했다. “당장 시행된다”고도 했다. 이에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면서 국경이 무너졌다.

말 한마디로 역사가 바뀐 사례는 많다. 정치인과 참모들의 말실수는 더욱 파장이 크다. 다섯 차례나 일본 총리를 지낸 요시다 시게루와 그의 외손자 아소 다로 전 총리는 본인과 측근들의 ‘가벼운 입’ 때문에 정권을 내놔야 했다. 미국 공화당이 2008년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민주당에 빼앗긴 것도 설화(舌禍)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첫 대변인으로 발탁된 송경희 전 KBS 아나운서는 잇단 말실수로 석 달 만에 경질됐다. 이라크전 관련 우리 군의 대북 경계태세를 묻는 말에 “워치콘(대북 정보감시태세) 3? 한 단계 높였다는 말이 있다”고 답했다가 기자들이 “데프콘(대북 전투준비태세) 아니냐”고 묻자 “잘 모르지만 한 단계 올린 것은 맞다”고 했다. 이 때문에 남북한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박근혜 정부 때는 조원동 경제수석이 “세금을 거둔다는 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빈축을 샀다. 나름대로 세금 문제를 쉽게 설명한다고 거위 얘기를 꺼냈지만, 졸지에 거위가 된 중산층이 정부에 등을 돌리는 결과를 빚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집값 폭등과 관련해 “모두가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도 거기 살고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24조치(천안함 피격 관련 대북 제재) 해제 검토’ 발언으로 한·미 관계뿐만 아니라 북핵 폐기를 위한 외교에 큰 혼란을 불렀다.

그제는 김현철 전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50~60대는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초래했다. 여론 악화를 우려한 청와대가 부랴부랴 경질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은 입이 무거워야 한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해 4월 이후 페이스북에만 40여 건의 글을 쏟아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재임시절 한 달에 한 번꼴로 SNS에 글을 올렸다. 새로 임명된 노영민 비서실장이 말조심을 시켰는데도 결국 ‘김현철 사태’가 터졌다.

예부터 “참모에게는 입이 없다”고 했다. 참모의 입이 요란하면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 잘못된 말은 매를 벌기도 한다. 매를 드는 주인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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