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임원들, 계급 떼고 플레이어로 뛰어라"
SK그룹이 이르면 오는 7월부터 부사장과 전무, 상무로 구분된 임원 직급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내 주요 그룹 중 임원 직급을 통일하는 건 SK가 처음이다. 기존의 수직적 직급 체계로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최태원 SK 회장 지론에 따른 것이다. SK는 임원 전용 기사 폐지와 직원 직급 단순화, 공유 좌석제 도입 등 다양한 업무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전무·상무 대신 본부장·실장

30일 재계에 따르면 SK는 조만간 부사장과 전무, 상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다. SK는 2012년부터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인사에서 임원들을 ‘신규 선임’과 ‘승진’으로만 구분하고 있다. 신규 선임은 새로 상무가 된 임원을 뜻하고, 승진은 상무에서 전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음을 의미한다.

오는 7월부터는 이들을 모두 위계 질서 없는 동급의 임원으로 간주하고 호칭도 본부장, 실장 등 직책으로만 부른다. SK는 임원 명함에 이그제큐티브 바이스 프레지던트(부사장·전무), 바이스 프레지던트(상무) 등으로 표기한 영문 직급 표기도 바이스 프레지던트로 통일할 예정이다. 경직된 한국식 직급 문화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다. 미국 등에선 최고경영자(CEO)를 제외한 임원을 바이스 프레지던트로 표기하고 있다.

SK가 임원 직급을 없애는 것은 임원을 관리자보다 핵심 플레이어로 활용하겠다는 최 회장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직급에 갇혀 있으면 인재들을 적소에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이미 상무급 보직, 전무급 보직에 연연하지 않는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직급 파괴가 공식화하면 이 같은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원의 상징과도 같았던 전용 차량에도 변화가 생겼다. SK는 최근 CEO를 제외한 임원들의 전용 기사제를 공용 기사제로 전환했다. 임원들은 출퇴근이나 가까운 거리는 본인이 직접 차량을 운전하고, 장거리 출장은 공용 기사를 배정받는다. 상무는 그랜저나 K7, 전무 이상은 제네시스나 K9을 타는 관행도 깼다. 직급별로 차량 제한을 두는 것도 업무 혁신을 방해하는 고정관념이란 인식에서다.

업무 공간과 구조도 혁신

SK는 그룹 최고 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계열사마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공유 사무실 도입이 대표적이다. 그룹 본사인 서울 서린동 SK서린빌딩은 지난해부터 리모델링 중이다. 그룹 내 사무실은 리모델링이 끝나면 글로벌 공유 사무실인 ‘위워크’와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직원들은 고정 좌석 없이 매일 새로운 자리를 예약해 다른 계열사, 다른 부서 사람들과 어울려 일한다. SK E&S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등 3개사는 서린빌딩 맞은편 그랑서울 빌딩에서 공유 사무실을 먼저 경험하고 있다. 광화문 케이트윈타워에 입주한 SKC도 공유 사무실 리모델링을 거의 마친 상태다.

조직 구성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과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부터 기존 업무 체제 대신 프로젝트별로 소규모 팀을 구성하는 ‘애자일(agile)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민함을 뜻하는 애자일 시스템 아래서는 누구나 프로젝트 리더가 될 수 있다. 이 또한 일종의 직급 파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직원이 자신의 전문 보직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애자일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