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3·1운동 100주년, 기억해야 할 이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항일유적지에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추모비가 건립된다는 소식이다.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어린 시절 연해주로 이주해 군납 사업으로 큰 부자가 됐다. 번 돈은 모두 독립운동에 바쳤다. 항일 의병조직 동의회, 한인 신문 대동공보, 한인 실업인 모임으로 위장한 항일단체 권업회를 이끌었고, 30여 개의 학교를 세워 동포들을 가르쳤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함께 계획하고 지원한 이도 선생이었다.

1920년 4월 일본군이 연해주 일대의 한인촌을 습격해 무차별로 살상, 파괴한 ‘4월 참변’ 때 선생은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이 추서됐지만 선생의 삶이 주목받은 건 최근에 와서다. 지난해 가을 답사를 주관했던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은 국비와 자체 예산을 보태 선생이 순국한 우수리스크 소베스카야 언덕 인근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 순국 99주기인 오는 4월께 기공식을 한다니 더욱 반갑다.

천도교가 앞장섰던 3·1운동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은 의암 손병희다. 의암은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을 이은 천도교의 3세 교조였다. 당시 천도교는 교인 300만 명의 최대 종단이었다. 경술국치 후 10년 안에 국권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의암은 권동진, 오세창, 최린을 앞세워 독립운동을 추진했고 별도로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있던 기독교는 물론 불교, 유림 등 각 종교를 망라해 손을 잡았다.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가 16명, 기독교 15명, 불교 2명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천도교의 교세는 극도로 위축됐다. 서울 경운동에 중앙대교당과 중앙총부를 짓는다며 교인들로부터 걷은 건축성금 500만원 가운데 30만원만 건축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대부분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사용했던 천도교의 위국헌신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은 것은 단지 위축된 교세 때문만일까.

최재형 선생과 천도교만이 아니다. 지난가을 연해주와 중국 북간도, 서간도의 항일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국내외에서 독립투쟁에 몸 바쳤던 선조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헤이그 밀사로만 알고 있었던 이상설 선생은 연해주에서 싸우다 순국했다.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삶, 얼마나 알고 있나

산포수 출신의 홍범도 장군, 북간도 항일운동의 중심지 ‘명동촌’을 일군 ‘간도 대통령’ 김약연 선생, 압록강 건너 단둥에서 무역선박회사를 운영하며 김구, 김가진, 김원봉 등 숱한 독립 영웅을 상하이로 실어나른 영국인 조지 L 쇼….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도 이름이나 알면 그나마 다행일 뿐 구체적인 삶에 관해서는 무지한 게 솔직한 고백이다.

이제 한 달 뒤면 3·1운동 100주년이다. 수많은 기념행사와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몸 바쳐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기억하고 공유하는 일이다.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끝났다”며 배상책임의 불가역성을 주장하고,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채 미래를 이야기하는 저들의 이율배반에 대해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방법이 바로 기억이다.

그러려면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의 삶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친일인명사전’ 못지않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항일인명사전’이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1만5000여 분의 삶이 정리돼 있긴 하지만 보다 쉽고 널리 읽히고 공유되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