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사실상 거부했다. 대통령의 호소까지 사흘 만에 걷어찬 셈이어서 정부 입장도 무척 난처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친노조 정책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급등한 최저임금과 줄어든 근로시간만이 아니다. 인사와 예산 배분부터 노조원의 불법 행위에 대한 공권력 대응까지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제도 개편 철회, 탄력근로제 확대 철회 등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건 채 ‘강경 투쟁 노선’을 택했다. “기득권만 집착 말고 노동시장 약자들을 배려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해달라”는 요구와 비판이 수없이 반복됐으나 ‘대화와 타협의 장’을 외면한 것이다. 이 와중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까지 31일의 경사노위에 불참을 선언했다.

양대 노조가 경사노위를 외면한 마당에 정부로서는 그간의 노동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함께 일대 방향 전환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경사노위는 노동 현안을 넘어 경제발전과 일자리 확충 방안까지 논의하자는 기구다. 이런 사회적 대화 자체를 거부한 과격 노동운동 그룹의 행태는 노사 간 균형을 도모하는 노동개혁이 왜 필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타협은 선택사항이 아니다”고 논평한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도 그래서 주목된다.

민주노총이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데는 정부 책임도 크다. 제도나 틀을 벗어나 막무가내로 투쟁해도 들어주니 거침이 없는 공룡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가 노조 눈치나 보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면 사회적 협의체를 통한 제도 개선이나 개혁은 아예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안 그래도 ‘경사노위 무용론’이 나오던 참이었다. 기득권 그룹이 된 강성 노조가 주도하는 극한적 노사 대립, 정부의 무(無)용기와 무책임, 갈등을 증폭시키는 후진 정치가 엉킨 한국적 풍토에서 경사노위가 제대로 가동도 못한 채 위기를 맞은 셈이다.

대화의 장을 거부한 민주노총부터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단단히 져야겠지만, 정부 또한 좀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노동시장 선진화가 경사노위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독일 하르츠 개혁 등 유럽 국가들이 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노동개혁과 고용 확대를 꾀한 선례는 배울 만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런 협상기구의 가동도 못할 정도라면, 법적 권한과 예산을 쥐고 있는 정부가 자기 책임하에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살아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제1의 조건으로 ‘노동개혁’을 꼽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국회의 역할도 한층 중요해졌다. 정부도 국회도 무엇이 노동약자를 보호하고 노동시장을 선진화하는 길인지 직시하기 바란다. 용기를 내 정공법을 택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