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최저임금 차등화해야 분배도 개선된다
최저임금제의 기원은 중세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348년 흑사병이 휩쓸고 간 유럽은 노동인력이 급감하고 임금이 폭등해 식량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이에 1351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역사상 최초로 임금의 최고 상한을 설정하는 칙령을 제정했다. 노동력의 절대 부족으로 최저임금 대신 오히려 임금 상한을 설정해야만 했던 역설적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법정 최고임금은 점차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활임금(living wage)으로 변질됐고, 실제 노동 착취를 방지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는 1604년에 이르러 제임스 1세가 섬유산업에 국한해 도입했다.

국가 차원의 근대적 최저임금제는 19세기 후반 노동조합의 부상과 더불어 뉴질랜드(1894년)에서부터 제정돼 오스트리아, 영국 등으로 확산됐고 현재 전 세계 국가 90%가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모든 산업과 지역에 동일한 법정 최저임금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미국은 연방법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7.25달러이지만, 실제 적용되는 기준은 지역마다 달라 와이오밍주는 5.15달러에 불과한 반면 뉴욕시는 15달러나 된다. 팁을 받는 업종에는 별도 기준이 적용된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지역과 산업, 연령 등 다양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법정 최저임금이 무려 1200개나 된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당연히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초기에는 청소년과 여성, 미숙련 단순직 등 소외계층 근로자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노동자의 후생 증진과 근로조건 개선을 반영하는 척도로 인용되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의 영향력과 정치적 포퓰리즘이 확산됨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조차 최근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점진적으로 15달러로 두 배나 인상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는 입법 취지와는 반대로 임금 수준이 높은 부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게 설정되면 소외계층의 일자리를 앗아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 수익성이 변변치 못한 영세업종과 자영업자 등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고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이나 고용감축을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보호받아야 할 계층의 피해가 오히려 더 커지고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이 증가하면 소득배분도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와 같은 교과서적인 부작용이 지금 한국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역설적인 현상을 해결하려면 선진국처럼 업종과 지역, 연령, 숙련도 등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양하게 차별화해야 한다. 숙박, 음식업의 중위임금은 제조업의 절반에 불과하고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34%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 산업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영세업종에서는 대량 해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물론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다. 지역별, 연령별, 평균 임금과 숙련도 차이 등 수없이 많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준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 규모 세계 11위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차별화가 불가하다고 하지만 법정 최저임금을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일정 범위에서 업종별로 당사자 간 합의로 운용하면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모든 업종에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저임금 산업을 중심으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실업이 증대돼 결국 분배가 더 악화되는 역설을 직시해야 한다. 또 자율적 협약을 통해 노사 모두가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도 박탈해 버린다. 선진국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져온 정책을 왜 우리만 애써 외면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