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을지면옥 등 노포(老·오래된 가게) 보존을 이유로 대규모 도심재개발 사업을 중지시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박 시장은 그제 을지로 일대 재개발로 노포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을지면옥 등이 위치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세운3구역(3만6747㎡) 10개 지역 중 7개 지역과 인근 수표구역(1만336㎡) 사업을 올 연말까지 잠정 중단시켰다. “(서민 애환이 서린) 노포가 보존되는 방향으로 개발 계획을 재설계하겠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구역 시행사와 토지주들은 13년째 추진 중인 사업이 갑자기 중단되자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서울시로부터 인허가를 받아 사업 막바지 단계인 철거 및 토지보상 작업을 벌이던 사업이 박 시장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멈춰서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10년 넘게 자금과 인력을 투입한 재개발 사업 내용이 갑자기 바뀐다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세운구역 재개발사업이 이렇게 주먹구구였다니 믿기지 않는다. 평소 ‘보존형 도시재생’을 강조하던 박 시장이 이미 오래전에 불거졌던 노포 보존 문제를 왜 이제서야 문제 삼는지도 궁금하다.

안 그래도 박 시장의 시정(市政)이 “진중하지 못하다”는 논란을 일으켜 온 터다. 박 시장은 며칠 전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광장 바깥으로 옮기고 ‘촛불’ 이미지를 새기겠다는 내용의 ‘광화문 광장 재조성 계획’을 밝혔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지난해에는 ‘용산·여의도 통개발계획’을 내놨다가 한 달여 만에 보류했다.

박 시장은 간편 결제 서비스 ‘제로페이’ 추진 과정에서도 논란을 빚었다. “제가 해서 안 된 일이 거의 없다”며 “제로페이 성공 여부에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가맹률이 8%(23일 현재, 서울시 집계)에 불과한 ‘제로페이’를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지만, 정책을 두고 내기를 운운하는 건 시정 책임자의 농담이라기에는 지나쳐 보인다.

수도 서울은 ‘중앙정부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그런 점에서 서울 도시정책 등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백년대계가 돼야 한다. 제대로 숙성이 안 된 정책이 남발되고, 주요 정책이 시장 한마디에 뒤집혀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