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美·中 인재전쟁이 안 보이나
지난달 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중국계 물리학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 정부의 인도 요청에 따라 중국 화웨이의 실질적 2인자 멍완저우가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됐다. 멍완저우 체포 소식에 묻혀 한국 언론에는 보도조차 되지 않은 이 부고가 어쩌면 미·중 패권경쟁의 실체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일지도 모른다.

50대 중반의 중국계인 그의 죽음을 두고 인터넷에서는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라는 음모론이 피어오르고 있다. 의혹의 배경에는 ‘천인(千人)계획’으로 명명된 중국의 글로벌 인재 확보 야심과 미국의 중국 ‘기술굴기’ 견제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명문 푸단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장수우청은 스탠퍼드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탁월한 연구 업적으로 물리학계의 ‘스타학자’로 떠올랐다. 그의 연구 성과는 사이언스지가 꼽은 ‘가장 중요한 10대 과학적 업적’ 목록에 오를 정도로 주목받았다. 응용물리학과 전기공학 분야에서 올린 그의 연구 성과에 주목한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에 따라 그를 영입했다. 몇 년 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단화캐피털을 창업했다. 세간의 의혹이 집중되는 것은 그가 사망하기 바로 전날, 단화캐피털이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미국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했다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발표 때문이다.

‘중국제조 2025’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10개 분야의 기술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중국의 산업정책이다. 2015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후 제시한 이 정책은 서방 기술에 의존해온 중국의 경제 패러다임을 중국기술 중심으로 변화시키려는 기술굴기 정책이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그 파장은 기술과 경제 영역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중국 산업에 핵심적인 기술을 제공해온 미국, 한국, 일본은 그들의 시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중국은 독자적인 글로벌 가치사슬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중국은 더 이상 선진 민주국가들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그들의 견제를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이익을 고수하는 지역패권국가로서 부상할 것이다. 정치체제는 달라도 경제라는 연결고리로 협력과 공존의 공간을 모색해온 중국과 서방국가들은 또 다른 냉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 기술굴기의 바닥에는 인재 확보가 자리 잡고 있다. 천인계획은 2008년부터 추진됐다. 해외에 있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파격적인 연봉과 연구비, 주택, 의료, 교육 인센티브를 주면서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지금까지 7000명 정도의 해외 중국계 과학자, 교수, 기업인들이 천인계획에 따라 귀국했다고 한다. 미국을 포함한 외국 과학자와 교수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봉쇄하기로 한 후 천인계획은 미국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됐다. 천인계획으로 영입된 중국 과학자들이 미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천인계획에 따라 영입된 미국 과학자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열린 교육 기회가 중국의 기술굴기에 이용된다는 의혹은 대학 입학 분야로도 번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올해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조기 입학허가를 받은 중국 본토 출신 학생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천인계획은 빙산의 일각이다. 중국은 지방정부, 대학 차원에서도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 외국 인재 확보 계획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으로 외국 인재를 유혹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성장하는 중국, 디지털 대전환기에 ‘AI 분야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불리는 중국에서의 풍부한 실험 기회와 지원 유혹은 쉽게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국가적인 인재 영입을 기반으로 기술굴기를 소리 없이 진행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자원을 쏟아붓고 커다란 인센티브에다 과감한 시도를 가능케 하는 규제환경을 앞세워 인재를 흡수하는 중국에 비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인재 영입은커녕 인재 유출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황이 이럴진대 혁신성장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