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비자가 외면하는 지역화폐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경기 시흥시 한 과일가게 상인에게 ‘시루’ 도입 이후 매출이 늘었느냐고 묻자 퉁명스럽게 되돌아온 반응이다. 시루는 시흥시가 발행하는 지역화폐다. 시흥시뿐만 아니다. 2006년부터 지역화폐를 도입한 경기 성남시의 한 상인도 성남사랑상품권으로 계산하는 손님이 한 달에 한두 명밖에 안 된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내 소비를 살리겠다며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지역화폐의 현주소다.

지역화폐가 외면받는 주요 이유는 소비자에게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금은커녕 휴대전화만 하나 달랑 들고 다녀도 물건을 사는 데 불편이 없는 세상이다. 해외에서 직접 물품을 사는 일도 흔하다. 전통시장 등 일부 상점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의 쓰임새를 감안하면 잘되는 게 이상할 판이다.

유일한 장점이라면 지역화폐를 액면가보다 5~10%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가 투입하는 세금 덕분이다. 하지만 원래 물건값보다 10% 이상 깎아주는 대형마트와 공동구매 사이트 등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최대 수혜자이어야 할 상인조차 지역화폐를 외면한다. 기자가 만난 대다수 상인은 손님에게 받은 지역화폐로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고 현금화하고 있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다. 지역화폐를 건네자 현금은 없냐며 인상을 찌푸리는 상인도 있었다.

본지가 지난 19일 ‘지역화폐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상황을 보도하자 네티즌 사이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탁상행정으로 세금을 쓰기에 앞서 공무원 월급부터 지역화폐로 받아보라”는 댓글이 달렸는데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경제학자는 현재 지역화폐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고 밝혔다. 소비자 편의를 고려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치적 쌓기’라는 공급자(지자체장) 편의만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강원도·태백시 등 지역은 소비자 외면 등을 이유로 지난해 지역화폐 예산을 다 쓰지도 못했다. 소비자 선택을 이끌어낼 방법에 대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지역화폐 발행액만 늘리는 것은 세금 낭비와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