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은 끝났다.’ 오랫동안 칼을 갈아온 히타치와 파나소닉, 소니 등 일본 제조 대기업들이 전열 재정비를 끝내고 속속 세계 시장의 전면에 재등장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활력이 크게 높아진 배경이다. 주요 대기업들이 고용을 늘리면서 제조업 고용자 수는 2017년 1000만 명을 넘어섰다.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6년 동안 일본에서 일자리가 450만 개나 증가한 데는 제조업 경쟁력 복원이 큰 역할을 했다.

‘과실’ 거두는 일만 남았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선 미쓰비시가 구조조정 완료를 선언해 주목받았다. 미야나가 ?이치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은 “구조조정이 완수됐음을 단언하며 이제는 새로운 성장을 준비할 때”라고 언론에 자신감을 표출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한때 일본 1위 조선사였지만 현재 매출 가운데 선박해양사업 비중은 5%로 줄었다. 히타치와 통합한 발전플랜트와 여객기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덕분이다.

가전 무너진 히타치, 철도 시스템 수출…파나소닉, 車 전장기업 변신
가전이 무너진 히타치제작소는 건물과 철도, 도시의 시스템을 수출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2010년 반도체 부문을 매각했고, 2012년에는 하드디스크와 중소형LCD(액정표시장치) 부문을 팔았다. 같은해 TV의 자사 생산을 접었다. 휴대폰 시장에서 ‘삼류’로 전락한 소니는 콘텐츠·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2008년 이후 직원 3만5000명을 해고하면서 PC사업과 배터리, 화학사업부를 매각하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을 감행한 결과다. 현재 소니 매출의 40%, 영업이익의 50% 이상은 엔터테인먼트·콘텐츠 부문에서 나온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최고경영자(CEO)는 “지금 소니의 부활은 결코 일시적인 게 아니다”고 자신했다.

파나소닉도 PDP TV 투자 실패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충격이 겹치면서 2012년부터 실적이 저조한 일반 가전부문의 비중을 줄였다. 대신 주력사업을 전기차 배터리 등 자동차 전장부품, 가전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첨단 주택으로 바꿨다.

일본에선 ‘잃어버린 20년’ 동안 매년 많게는 1만9000개 기업이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제살 뜯어먹기식 경쟁을 줄이면서 대대적 사업재편을 단행해 역경을 이겨낼 힘을 키웠다. 야노 가즈히코 미즈호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기업이 엔고와 한국·중국 기업의 추격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때 고부가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글로벌 공급체계를 갖추면서 기초체력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가전 무너진 히타치, 철도 시스템 수출…파나소닉, 車 전장기업 변신
구조조정도 ‘낙수효과’

일본 기업의 경쟁력 회복은 일부 간판급 대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기업 규모와 업종에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제지업체인 오지홀딩스는 2007년부터 디지털화에 따른 종이 수요 감소로 경영 환경이 악화하자 사업개편에 착수했다. 일반 인쇄용지가 아닌 골판지와 가정용 티슈 등으로 사업 방향을 과감히 틀었다. 이 회사는 2018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에 일본 제지업계 사상 처음으로 1000억엔(약 1조260억원)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수익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전통 제조업 분야에선 괄목할 만한 성과다.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업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포장용 골판지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수혜를 그대로 입었다.
히타치제작소와 파나소닉 등 일본 주요 기업은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 사업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도쿄의 주요 사무지구인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에 있는 히타치제작소 건물(아래 사진)과 미나토구 시오도메에 있는 파나소닉 건물(위에 사진)로 양사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히타치제작소와 파나소닉 등 일본 주요 기업은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 사업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도쿄의 주요 사무지구인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에 있는 히타치제작소 건물(아래 사진)과 미나토구 시오도메에 있는 파나소닉 건물(위에 사진)로 양사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친기업정책이 북돋운 자신감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일본 기업들은 수익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법인기업 경상이익은 2012년 49조6000억엔 수준에서 2018년 83조1000억엔으로 33조엔 넘게 늘어났다.

일본 기업이 활로를 찾은 데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마중물 역할을 했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일본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졌고, 대대적인 환경·노동규제 완화 덕에 경영여건도 크게 개선됐다. 니시오카 준코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연구원은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함께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 일본 정부의 안정적인 경제정책 효과가 겹치면서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 경제가 꾸준히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다. 다케다약품공업은 620억달러(약 69조5900억원)에 아일랜드 다국적 제약사 샤이어를 인수했다.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는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인 인티그레이티드디바이스테크놀로지(IDT)를 품었다. 구조조정만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글로벌 M&A를 통한 차세대 먹거리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