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니시 히로아키 일본 게이단렌 회장이 지난 16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게이단렌회관에서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을 만나 일본 경제 현안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나카니시 히로아키 일본 게이단렌 회장이 지난 16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게이단렌회관에서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을 만나 일본 경제 현안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과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부품·소재와 첨단기술 산업에 집중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엔고가 다시 와도 자신 있습니다.” 다소 쌀쌀한 바람이 불던 지난 16일 오전. 도쿄도 지요다구 오테마치의 게이단렌회관 23층에서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을 한국 언론 최초로 만났다. 표정은 온화하고 겸손했지만 말투는 활달하면서도 단호했다. 달변으로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종횡무진했다. 그는 “일본 기업들은 정부·국민과 한마음으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 경제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평이 적지 않습니다. 정말로 침체의 터널을 벗어난 것으로 보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구가했지만 1990년대 들어 거품이 꺼지면서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고 기업들도 혁신을 주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전환점은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부가 들어서면서 마련됐습니다.”

▶아베노믹스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까.

“아베 정부 이후 그동안 산적한 과제들이 거의 다 해결됐습니다. 환율 문제, 세금 문제, 노동환경 문제 등이 속속 개선됐습니다. 기업 경영과 경제 환경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일본 경제는 안정적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인위적인 엔저 정책의 덕을 많이 봤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엔저는 환율조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투자와 소비를 살려내기 위한 금리 인하에 방점을 둔 것이었어요. 엔저로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올라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엔저가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엔고가 다시 와도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은 디지털 변혁의 시대입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의 기술 진보가 경제와 기업 경영의 틀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뤄진 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일본 산업계의 신진대사와 주력사업 교체가 오랫동안 부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과 혁신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산업계 전체가 과거 수동적인 태도를 벗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중국 제조업의 추격에 위기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의 제조업 부상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기업에 대한 대응전략도 들려주십시오.

“중국은 전자업계를 중심으로 대량생산에 강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량생산 측면에선 일본이 두 국가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승산이 낮은 대량생산 분야에서 손을 떼고 첨단기술 분야의 다른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런 덕을 보는 것일까요. 현재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강해지는 것에 특별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과거 우리가 잘하던 것을 이제 그들도 잘하게 된 것이라고 편하게 바라본다고 할까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한 대응 방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제가 몸담고 있는) 히타치의 경우를 보면 헬스케어 사업이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은 한방의료 분야에서 강점을 보일지 몰라도 병원 경영은 잘 못합니다. 근대적인 병원 경영 부문에선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런 부분이 히타치에는 새로운 사업 분야가 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시장을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기보다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6일 조일훈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왼쪽 두 번째)과 김수언 국제부장(첫 번째) 등이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오른쪽 첫 번째)의 얘기를 듣고 있다.
지난 16일 조일훈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왼쪽 두 번째)과 김수언 국제부장(첫 번째) 등이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오른쪽 첫 번째)의 얘기를 듣고 있다.
▶최근 성장 지표가 다소 주춤하고 있는데요. 일본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십니까.

“낙관만 할 수는 없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의 이노베이션(혁신)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은 경박단소(輕薄短小)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일본 경제인들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꿈꾸고 있는지요.

“경박단소로 대표되는 전자산업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철수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와 TV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박단소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려는 기업인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가장 주력하고 있고, 실제로도 수익이 올라가고 있는 분야는 재료산업입니다. 일본 기업만이 만들 수 있는 고기능 재료 분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공장자동화 시스템과 로봇, 공작기계 등도 유망 분야입니다. 이들 분야에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봇, AI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의 일본 기업의 대응 전략을 설명해 주십시오.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한데 일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소사이어티 5.0’이라고 표현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변화가 일어나는 곳은 제조업뿐만이 아닙니다. 금융 분야에서도 핀테크를 바탕으로 한 과거와 전혀 다른 금융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특히 소매, 물류 등이 일체화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정책 수립 과정을 보면 정부가 경제계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 같은 신뢰관계를 구축했는지요.

“경제정책만 놓고 보자면 정부와 산업계 간에 의견 차이가 없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이 설 자리를 잃으면 국가 발전에도 해롭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어요. 누가 누구 말을 얼마나 들어주느냐의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운명공동체입니다. 서로 경청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게이단렌 회장인 제가 올해도 계속 바쁘게 지내는 이유입니다. 하하하.”

▶최근 게이단렌은 기업 임금 시스템 개편 등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의 직장 문화와 근로 시스템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일본 기업들은 고도성장기에 종신고용을 했습니다. 한 기업의 내부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고용 시스템이었습니다. 임금도 연공서열에 따라 올랐습니다. 과거에는 효율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변화가 심한 시대에는 혁신을 이뤄내기 어렵습니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금체계를 효율적이고 단순하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크게 이의가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를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산업계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산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정부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일손 부족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외국인 근로자를 적극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와 손발을 맞추고 있고, 그런 논의가 구체화된 것이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확대 정책입니다.”

■나카니시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휘청이던 히타치, V자 실적회복 주도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73)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휘청이던 히타치제작소의 ‘V자 실적 회복’을 주도한 인물이다.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사상 최악인 7873억엔(약 8조795억원) 적자를 기록한 회사를 사장 취임(2010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는 수완을 발휘했다. 발빠른 자회사 재편과 사업구조 개혁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2014년 히타치 회장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5월엔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전 회장의 뒤를 이어 게이단렌을 이끌고 있다.

1970년 도쿄대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히타치제작소에 입사했다. 히타치에서 ‘주류’가 주로 근무한다는 이바라키현 히타치공장이 아니라 오미카공장에서 ‘비주류’로 경력을 쌓으며 ‘야성’을 키웠다는 평이다. 히타치 유럽법인과 북미법인 대표 등을 지냈으며 제프리 이멜트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지니 로메티 IBM 회장 등과 친분이 깊다.

■약력

△1946년 요코하마 출생
△일본 도쿄대 전기공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석사
△히타치제작소 국제사업부문장
△히타치제작소 북미 총대표 겸 유럽 총대표
△히타치글로벌스토리지테크놀로지스 CEO
△히타치제작소 사장
△히타치제작소 회장
△게이단렌 회장


정리=김동욱 도쿄특파원/임락근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