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2차 정상회담을 위한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어제 미국 워싱턴DC로 떠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조율할 예정이다. 2차 정상회담에선 북한핵 폐기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때처럼 북한핵 폐기에 대해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하고 이벤트에 그쳤다는 지적이 더 이상 나와선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참에 ‘비핵화’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어제 “북한의 비핵화 정의에 대한 혼선이 (미·북)회담에 구름을 끼게 만든다”며 한국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 가운데 어느 쪽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핵 폐기가 목적이라면 ‘북한 비핵화’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줄곧 주장해왔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국의 핵 우산을 먼저 없애려는 본색을 여러 차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제공하는 미국의 핵우산 철회 주장은 한·미 동맹 파기를 노린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남북한 정상회담과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문에선 ‘북한 핵 폐기’를 못 박기는커녕 ‘한반도 비핵화’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대충 얼버무려왔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북한의 비핵화는 차이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다른 말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숨은 북한의 의도를 안다면 선택은 명확하다. 더 이상 김정은의 ‘한반도 비핵화’ 발언에 맞장구 치고 환호할 게 아니라 ‘북한 비핵화’로 명확히 정리하고 북핵 협상에 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 핵은 그대로인 채 한국의 안보만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