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에 나섰다. 기업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 두 기업에 처음 적용되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을 겸하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이 위원회에서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실무를 맡기겠다고 했으나, 두 회사에 대한 경영개입 수순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시도할 수 있는 ‘적극적 주주권’은 임원 선임·해임, 정관변경, 회사 합병 등 10가지에 달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처음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연금사회주의로 가는 발판이 된다는 전문가들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00만 명이 넘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판단이 모두 다를 것인 만큼, 관리대행자가 연금의 주인들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은 다른 주주들의 의결권에 비례해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투자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재무적 투자자로 남는 게 타당하다는 이론도 그래서 나왔다.

본질은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국민연금의 경영개입이 과연 누가 부여한 권한인가 하는 문제다. 어제도 찬반 논란 속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재벌손보기를 위한 관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반대 토론회가 열렸다. 정부의 개입, 곧 국민연금의 인사·운용권을 쥔 정치권력의 민간기업 간섭에 대한 전문가들의 문제제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를 둘러싼 일부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면 더욱 경계의 대상이다. 이들을 둘러싼 추문과 의혹은 검경, 국세청, 관세청 등 11개 국가기관이 이잡듯 조사를 벌여왔다. 국민연금까지 편승했다가는 포퓰리즘 논란을 유발할 수 있다. 가뜩이나 한진칼은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지분 매수에 나서면서 경영권 다툼에 휩싸여 있다. 이 분쟁에 국민연금이 가세하는 것이 다른 기업에 미칠 영향도 감안해야 하고, 외국인투자자들의 소송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국민연금이 전문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려면 ‘정치’ 배제와 함께 여론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국민연금 스스로도 살아남기 위해 개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