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중견기업 대표들을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 등 128명의 기업인과 만났다. 지난 7일 중소·벤처기업인들에 이어 올 들어 문 대통령이 두 번째로 가진 ‘기업인과의 대화’여서 경제·산업계의 관심이 적지 않았다.

어제 기업인과의 회동에 대해 청와대는 “경제계와의 소통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민간과 정부가 함께 혁신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간담회”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경제정책 방향이나 지향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자세히 밝힐 기회를 가져왔던 만큼 이런 행사를 통해 기업 쪽 얘기를 직접 들어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될 만했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가 기업인 간담회를 왜 가졌느냐는 점이다. 당장 다급한 현안이나 구체적인 주제를 특정하지 않은 채 ‘소통’을 강조한 것을 보면 기업들의 고충을 듣고 정책에 반영할 것이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규제완화 같은 해묵은 과제는 ‘최소한의 요청’이라고 봐야 한다. 청와대가 이 정도의 애로와 고충을 들어보겠다면 이미 문건 등으로 정확하게 정리된 것도 부지기수다. 이번 행사를 청와대와 함께 준비한 대한상의의 박용만 회장이 최근 5년간 정부와 국회에 낸 규제개혁 건의만 38건에 이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다른 단체도 저마다 전문성에 입각해 적지 않은 정책 제안서를 냈다.

청와대의 ‘소통’과 ‘경청’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제는 뭔가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대화를 하는데 법무부는 기업 경영권을 옥죄는 상법개정안을 꺼내드는 식으로는 소통도 신뢰도 요원해진다. 반대로 기존 상법이나 공정거래법에 있는 경영권침해 독소조항을 없애나가야 한다. 일련의 친노조 기조의 고용 및 노동 정책도 이참에 바뀌어야 한다.

새해 들어 경제의 위기 징후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기업 93%가 ‘불황 국면’이라고 답했다. 정책전환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듣기 좋은 대통령의 말이 기업인에게 ‘희망 고문’이 돼서도 안 된다. 대통령이 들은 기업 애로가 향후 정책에 최대한 반영되기 바란다. 그래야 대통령이 요청한 투자확대와 고용창출에도 속도가 붙는다. 대통령이나 기업인들이나 얼마나 바쁜 와중에 만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