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연금, 정치에 휘둘려선 안 돼
국민연금은 장기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운용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5년마다 재정계산을 시행하고 있다. 작년 제4차 재정계산이 이뤄졌다. 재정계산을 위해 구성된 위원회 중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필자는 당시 느꼈던 당혹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연금기금 고갈 시점이 제3차 재정계산 때보다 3년 더 빠른 2057년으로 예상돼서다. 기금 고갈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된다. 첫 번째는 국민 부담 증가다.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료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부담을 기금 고갈 시점의 봉급생활자인 후세대가 떠안게 된다. 기금이 없으면 세금으로 국민연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국민의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다.

두 번째는 기금 고갈 과정에서 보유한 주식 등을 처분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4차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2041년까지 1778조원으로 늘어난 국민연금기금 적립 규모는 2042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약 15년 후인 2057년이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민연금은 적립금의 상당 부분을 국내외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다. 기금이 줄어들면 보험료 지급을 위해 보유한 주식 등을 처분해야 한다.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20년 뒤 국민연금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아니라 폭탄이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은 이런 점들을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국민연금은 20년 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국민연금을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정치적 목적 달성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우려스럽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작년에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적극 행사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총수의 이사 선임을 반대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연금이 기업 총수의 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와 목적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주인이고, 주인인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은 노후 소득보장이다. 노후 소득보장을 위해서는 수익률 제고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정립해야 한다. 4차 재정계산 결과에서도 국민연금기금 투자수익률이 0.1%포인트 증가하면 기금 고갈 시점이 1년 늦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수익률 제고가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이 돼야 하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할 때 수익률만 생각하는 것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언젠가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무리 결과가 옳다고 해도 수익률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판단만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 시 추계기간을 70년으로 정하고 있다. 가입자의 생애를 감안해 설계하기 때문에 장기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5년 한시적인 정권이 먼 미래를 보고 국민연금을 운용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해 국민이 관심을 갖고 명확한 기준을 만들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연금기금 운용 기준은 국민의 노후 소득보장이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할 때도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수익률 제고가 최우선 기준이 돼야 한다. 국민연금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면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