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통상환경이 심상치 않다. 미국이 철강 수입물량을 제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유럽연합(EU)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최종 조치를 내놨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로 인해 미국으로 수출되던 철강제품이 유럽으로 유입될 것이란 우려에서 EU가 지난해 7월 취했던 잠정조치가 확정된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 정한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은 어디로 갔는지, 보호무역 조치가 또 다른 보호무역 조치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EU의 무(無)관세 쿼터 물량 확대 등 우리 입장이 반영됐다고 하지만 철강업계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럽에 주로 수출되는 품목이 대형 철강업체의 주력제품인 판재류인 데다, 잠정조치에 없었던 품목들이 새로 쿼터에 포함된 것도 부담이다.

통상 악재에 직면한 건 철강업계만이 아니다. 자동차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부과 및 수출 물량 제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고, 반도체도 중국의 반독점 규제 적용 여부 등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이 국내 조선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문제삼아 WTO 제소에 나선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의 공세가 한·일이 경합하고 있는 다른 업종으로 확대되지 말란 법도 없다.

중국이 다음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미국경제학회(AEA)의 잇따른 우려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 수출의 27%를 차지한 중국이 위기에 빠져들 경우 국내 기업은 수출 타격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전방위적인 보호무역 조치가 동시에 가해질 공산이 크다.

이런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에 위협을 느낀 일본·호주·캐나다 등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지난해 말 발효됐지만, 우리나라는 가입 여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다른 한편에선 새 경제블록이 출현하는 등 통상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할 통상당국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