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버지 회상
겨울날 얼어붙은 창밖 풍경을 보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김규동 시인 생각이 난다. 유난히 다정했던 선친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쓰이던 덕수궁 연못에서 손을 잡고 얼음지치기를 가르쳐 주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동생과 얼음판에서 긴 시간을 보낸 후, 회사에서 짬을 내 일부러 들른 아버지가 내놓던 중국집 고기만두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시대를 앞서 갔던 아버지와 보낸 ‘새로운 시간’의 기억이 많다. 다섯 살 때 종로 단성사 극장에서 아버지 무릎에 앉아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봤다. 영화평론도 썼던 아버지는 우리 형제를 극장에 자주 데려갔다. 그래서 후일 우리 형제 모두 영화를 자주 보며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젊은 시절 폐병을 앓은 아버지는 평생 치료책으로 일광욕을 중시했는데, 그 덕에 여름철 우리 가족은 1960년대 뚝섬에서 나룻배로 강을 건너면 있는 한강 백사장에서 준비해간 소박한 점심을 먹고 일요일 오후를 뜨거운 햇살 아래서 보내곤 했다. 아버지는 수영도 가르쳐 주었는데, 그때 배운 배영이 아직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수영법이다. 형제들이 물놀이할 때 아버지는 밀짚모자를 쓰고 책을 읽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아버지의 마른 몸이 기억 속에 길게 남아 있다.

모더니스트 시인이었던 아버지는 1970~1980년대를 재야의 민주화 문인으로 살았는데, 그 무렵 시와 활동상에는 독재의 어둠 속에서 고뇌한 시인의 아픔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칠순에 가까워지면서 시구를 나무판에 새기는 전각 작업을 시도했다. 아버지는 이를 시각(詩刻)이라 불렀는데, 밤낮을 끌로 글자를 새기는 일에 몰두했다. 새로운 과제를 정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는 아버지였다. 결국 119점을 완성해 ‘통일염원 시각전’을 광화문에서 열었는데, 자작시를 새기면서 “시각을 하면 시가 짧아진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말씀했다. “민족 통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새기는 것”이라는 심중의 말씀이 가슴을 때렸다.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정신적 유산은 ‘새로움에 대한 수용과 최선의 추구’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저녁에도 병석의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시인 정지용 선생에 대한 찬사를 붓글씨로 썼는데, 그 유묵이 우리 집에 걸려 있다. 필적 옆의 날짜를 혼동해 쓰고 다시 고친 흔적이 당시 아버지의 몸 상태와 불굴의 의지를 표시해 주는데, 아버지에게서 ‘강한 정신’을 배웠다.

2019년 새해에 우리 사회엔 어려운 과제가 많다. 갈등과 혼돈의 경계선을 넘어 겨레가 함께 힘차게 미래로 달려갔으면 좋겠다. 나 또한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늘 노력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새해의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새해! 미래로 가는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