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세계 경제가 약해졌다. 시장은 불안정하고,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거대 기술기업은 불안한 성장을 지속하고,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펴낸 《2019 세계경제 대전망》의 첫 구절이다. 이어지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 모든 요소가 현재를 예측하기 어려운 동시에 흥미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 첫날이 밝았다. 60간지(干支)로 황토의 기운을 담은 돼지의 해여서 올해는 ‘모두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황금돼지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설렘 속에서 맞는다. 한국경제신문 독자 모두에게 행운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응원한다.

현실은 쾌청하지 않다. 마주하고 이겨내야 할 도전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대로 올해를 관통할 열쇠 말은 ‘불확실성’이다. 주력 산업의 쇠퇴 조짐이 뚜렷한 가운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 등 신흥국 모두 경제가 숨고르기에 들어설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한국이 특히 더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최근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내다본 게 대표적 예다. 작년 8월 2.7%로 봤던 기존 전망치를 끌어내렸다. 급격한 투자 감소를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건설투자 악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가운데 전반적인 설비투자 부진이 더 큰 문제라고 봤다. 투자가 움츠러들었다는 것은 ‘성장동력이 사그라졌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투자 없이 ‘일거리’가 생길 수 없고, 일거리가 없는데 제대로 된 ‘일자리’가 창출될 리 만무하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도 하강국면을 알리는 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올해 1분기 수출산업 경기가 2년 만에 악화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얼마 전 발표했다. 우리 경제가 더는 ‘기댈 언덕’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소집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가 안 보인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하기에 이른 배경일 것이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듯한 화법이었지만, 국정 최고책임자가 ‘미래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다는 점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이제는 그에 상응하는 진단과 처방을 내놔야 할 때다.

"기술로부터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다"

세계 각국 경쟁력강화에 사활 걸고 있는데, 우물안 규제에 갇힌 채 '말로만 혁신성장'
'과거' 아닌 '미래' 보고 제도·시스템 개혁…당면한 도전과제 정면돌파할 역량 모아야


무엇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우려하게 하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지난 26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대통령과 참석자들의 입을 통해 집중 논의됐다. 지금까지 ‘추격형 경제’로 큰 성과를 거뒀지만 그 모델로 계속 가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고(문재인 대통령), 기업들이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도록 하려면 의욕을 꺾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다(김광두 자문회의 부의장)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경제의 활력과 혁신에 달려 있다는 데 달리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최우선시 해온 ‘적폐청산’이 특히 많이 언급됐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지만, 범위와 기준이 모호해 다수 기업이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김 부의장)는 말뜻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책임자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나라 전체의 큰 담론이 ‘과거’를 파헤치는 쪽에 머물면 사회 구성원들 간 편 가르기와 소모적 논쟁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제도와 시스템의 쇄신은 소홀히 한 채 인적 청산에만 골몰해선 달라지지 않는다.

긴 말이 필요치 않다. 이젠 ‘우리 경제의 미래가 보이도록’ 할 책무가 대통령과 정부·여당 책임자들에게 있다. 방법을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내놓은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보고서에 해법이 담겨 있다. ‘3%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혁신성장’이 그것이다. ‘과도한 규제나 관행이 융·복합 등 창조적 파괴를 제약하고 있는 만큼, 경쟁 제한적 제도를 혁신해서 생산성 중심 경제로 전환’(보고서 5쪽) 하겠다는 다짐을 그대로 이행하면 된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의 이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대주주 지분율 제한(은산분리)을 푸는 등 규제완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격의료, 차량공유 등처럼 정부가 허용을 약속하고도 기존 사업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헛바퀴만 돌리고 있는 ‘말로만 혁신성장’ 분야가 훨씬 더 많다.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 한국대표가 “차량공유서비스 확대를 둘러싼 사회적 충돌 해결 과정을 보면 한국 사회가 아직까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 대로다.

복잡하게 따질 게 없다. 문 대통령이 지난 17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각 부처 장관들에게 당부한 “새해에는 경제 활력을 지원하기 위해 규제혁파를 통한 투자 지원에 나서라”는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면 된다. 대통령이 “정부가 산업계의 애로를 들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까지 한 마당이다. 산업계의 애로가 무엇인지는 주요 경제단체장들이 엊그제 발표한 신년사에 잘 요약돼 있다. “규제가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 부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규제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규제를 포함한 법과 제도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바꿔 기업이 경제사회적 효용을 창출하는 시도가 활발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부가 새겨야 할 게 있다. 국가 간에 상품과 사람뿐 아니라 기업 자체의 이동도 가능해진 시대다. 세계 각국이 경제 혁신과 활력 제고에 미래 사활을 걸고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일본의 ‘커넥티드 인더스트리’, 중국의 ‘제조 2025’ 등처럼 산업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모든 국가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만 협소한 국내 논리에 갇혀 ‘우물 안 규제’를 남발한다면 우수 기업과 인재의 해외 유출을 자초해 ‘일거리’와 ‘일자리’를 스스로 날려버릴 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술로부터 도망칠 수도, 기술을 이용해 숨을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정면대응해 이겨내는 것뿐이다. ‘미래’를 향해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으고 신명을 낸다면 못 해낼 게 없다. 새해를 ‘활력과 혁신의 원년’으로 삼아 새롭게 도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