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나'라도 잘하는 사회
나라가 어지럽기 짝이 없다. 외교, 국방에서부터 소득, 일자리 문제까지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게 없다. 방향은 맞는데 속도가 안 나서 그러니 기다려 달라고 하다가 이젠 너무 속도가 빨라서 그랬으니 속도 조절을 하면 괜찮아진단다. 국민들은 차가 고장 난 것은 아닌지, 운전기사가 무면허는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KBS의 TV나 라디오에서는 이게 공영방송이 맞나 싶을 정도의 내용을, 기절초풍할 경력의 인물들이 진행하는 것을 보고 실망과 분노를 토로하는 시청자가 급증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올라만 가고,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의 비명소리는 날로 커져 가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건지, 경제를 살릴 의지와 능력은 있는 건지 국민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날을 대비하기도 벅찬 판에 적폐청산이란 칼을 씌워 지나간 시절에 큰일을 맡았던 사람들을 인민재판 무대로 불러내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그 당시 기준으로 중요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한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론되는 죄목이 뇌물이나 횡령이 아니라 업무방해나 직권남용 같은 ‘고상한’ 것들이어서 보통사람은 무슨 죄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정작 당하는 사람은 죽음까지도 생각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보고 있는 현직들이 저런 꼴 당하지 말아야지 하고 바짝 엎드려 아무런 의사결정을 안 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끌고 가는 주류 집단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 사람들은 평생 갈망하던 국가적·사회적 아젠다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기쁨과 희망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 반대편에는 “나라가 이대로 가면 큰일”이라며 우국의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라 형편에 대한 생각들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집단적 무기력’ 증상이다. 걱정하면서도 “내가 나선다고 무슨 일이 되겠어”라고 지레 포기하는 증상 말이다.

우리 국민이 무기력증에 걸려 있다면 세계가 놀랄 일이다. 우리가 어떤 국민인가.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사람들 아닌가. 외환위기 때 외국에 진 빚을 빨리 갚으라고 장롱에 있던 돌반지, 금비녀를 들고 나온 사람들 아닌가.

우리는 나라에서 무언가를 해 주겠거니 하고 앉아 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독종도 그런 독종이 없었다. 나라 재정이 취약했으므로 복지에 대한 기대란 언감생심이었고, 내가 열심히 살면 나라도 잘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오히려 나라 걱정하던 사람들이었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의 책임을 지킬 줄 아는 듬직한 국민이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지키는 문제에 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은, 그래서 자유와 책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본능처럼 몸에 지니고 있던 선진시민이었다.

그랬는데 뭔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이 나라에 바라는 것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 18대 대선 때부터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살포하면서 국민들의 자조·자립정신을 훼손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너도나도 정부에 손 내미는 현상이 보편화돼 버린 듯하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 근처에 왔으니 이제 나라 덕 좀 보자고 국민들 정신자세가 바뀐 것인가.

건강한 사회란, 능력 있는 사람들은 능력껏 일해 성과를 향유하면서 납세 등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능력이 없는 소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국가가 집중적으로 지원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사회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원칙이 무너질 때 사회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2019년 새해에는 남북한 문제도 잘 풀리고 경제도 활성화돼 사회 곳곳에 웃음꽃이 만발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일류시민이 돼야 할 것이다. 나라가 어렵다고 남 탓이나 하고 앞날이 걱정된다고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나라가 못하면 ‘나’라도 잘하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