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계 애로를 경청하고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속도조절을 언급했지만, 이후 정부의 행보는 영 딴판이다. 그제 차관회의에서 월급제 근로자가 일하지 않는 유급휴일(토·일)도 근로시간 산정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경제단체들이 ‘실제 일한 시간만 근로시간에 포함하라’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재고를 호소했지만 그냥 밀어붙인 것이다.

내년 1월1일부터 10.9% 인상될 최저임금과 더불어 ‘2차 충격’이 예고돼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주 52시간제 부작용을 보완할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는 내년 1월 말로 미뤄졌다. 위반 기업들에 대한 ‘처벌 유예’ 계도기간이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정부는 노동계 반발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상반된 메시지로 인해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대로 가면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범법자가 될 판이다. 최저임금법 시행령은 5000만원 이상 고액 연봉자도 최저임금 미달로 만들 수 있다. 또 탄력근로제 확대 입법이 늦어짐에 따라 계도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주 52시간 위반 시 사업주가 처벌대상이 된다. 기업인들에게는 입술이 바싹 마르고 속이 타들어가는 문제인데, 정부와 정치권은 한가해보이기만 한다.

대통령이 기업의 애로사항 경청과 ‘경제 활력’을 강조하자 “이젠 달라지려나 보다”는 기대를 가졌던 기업들로선 기가 막힐 일이다. “월급을 줘본 사람들이라면 이토록 무책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이런 와중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소득주도 성장이 지속 가능하게 더 강화됐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했고,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는 말로 ‘본색’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경청과 속도조절’ 언급이 허언(虛言)이 안 되려면 이제라도 기업의 호소에 담긴 경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24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대통령령)을 재논의해 유급휴일 문제를 대법원 판례에 맞게 고치고,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을 탄력근로제 입법까지 연장한다고 선언하면 된다. 현실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오기의 정책’이 기업들을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