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가업(家業) 포기' 내모는 나라

1967년 창업한 농우바이오는 외환위기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국내 종자(種子)회사다. 2011년 종자수출 1360만달러를 달성해 ‘1000만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2013년에는 ‘300대 강소(强小)기업’에 선정됐다. 그러나 창업주가 갑자기 타계한 뒤 유족들이 상속세 12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를 팔아야 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제조회사였던 쓰리쎄븐도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했다. 국내 최대 고무의류·콘돔 제조회사 유니더스와 밀폐용기 세계 5위 기업 락앤락 역시 이런 아픔을 겪었다. 명목 상속세율 50%에다 대주주 경영권 승계에 대한 할증(30%)으로 최고 65%까지 세금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6%)의 두 배를 넘는다. 이 때문에 가업 승계를 계획 중인 중소기업이 지난해 67.8%에서 올해 58%로 줄었다고 한다. 승계를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10곳 중 4곳에 이른다는 얘기다. ‘가업 승계 특례제도’가 있긴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유명무실한 상태다.

현행 제도상 중소기업 경영권을 다음 세대가 승계하면 200억~500억원의 상속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상속 이후 10년간 정규직원 수가 줄어서는 안 되고, 유상증자로 투자를 받더라도 지분율이 낮아져서는 안 된다. 법인 자산 8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구조조정도 제때 할 수 없다. 이렇게 까탈스러우니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연간 70개 안팎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활발한 가업승계 덕분에 ‘히든 챔피언’이 많이 나오는 독일에서는 가업상속공제가 연간 1만7000건에 이른다. 가업 승계 실질상속세율도 4.5%밖에 안 된다. 스웨덴과 캐나다 호주 홍콩 싱가포르 등은 상속세를 폐지했다. OECD 회원국 중 17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13개국은 공제 폭이 넓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계가 얼마 전 가업 승계 상속세율을 50%에서 25%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가업 승계 펀드를 신설하고 장수기업을 공공기관 우선구매 대상으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외국 사례들을 보더라도 오래된 기업일수록 고용과 법인세 납세 규모가 큰 만큼 사업을 승계·유지하도록 돕는 편이 낫다.

우리 사회의 인식 또한 바뀔 때가 됐다. 가업을 이어받아 키우는 것을 단순히 부(富)의 대물림이나 불로소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유지, 전문기술과 노하우 계승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상속 두 번 하면 회사가 없어질 정도로 가혹한 상태에서 독일이나 일본처럼 100~200년 장수기업이 어떻게 나오겠느냐”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을 정부와 국회가 귀담아 들어야 한다.

kdh@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