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손학규 단식 풀기'에 그친 선거제 논의 합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단식 중이던 지난주 국회 본관 로텐더홀의 농성장을 수차례 찾았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단식까지 해야 하는 정치 상황이 안타깝기도, 건강이 우려스럽기도 했다. 단식 수일째에도 방문객들과 환담을 나눌 정도로 건재한 손 대표의 모습은 의외였다. 단식 9일째 손 대표를 방문한 명진 스님은 “얼굴이 맑아졌다”는 농까지 건넸다.

‘칩거’ ‘토굴 생활’ 등 정치적 승부수를 띄울 때마다 국내외 초대형 이슈에 파묻히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했던 손 대표 입장에선 모처럼 오롯이 받는 세간의 주목에 힘이 날 법도 했다. 그도 ‘손학규 징크스’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단식 2일차인 지난 7일 기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청와대에서 오후에 김정은 답방과 관련해 중대 발표를 한다는 설이 도는데 사실이냐?”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열흘을 버틴 노정객의 결기는 여야 5당을 선거제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냈다. 소기의 성과는 거둔 셈이다.

그런데 어렵사리 시작된 선거제 협상이 벌써부터 산으로 가는 모양새다. 여야 합의는 ‘손학규 단식 풀기용’이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내년 1월까지 여야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기초로 한 선거제 개편안을 만들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합의가 실제 성사될 것으로 보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내년 1월까지 논의해서 풀릴 문제였으면 진즉에 됐다. 여야 합의는 손학규, 이정미 대표 단식 푸는 용도였던 것 같다”고 했다. 한국당 영남권 중진 의원은 “지금 국회에는 선거제를 바꿀 만한 동력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용어조차 생소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로 의석수를 나누는 제도다. A당이 정당 득표율 20%를 확보했다면 현 300석의 20%인 60석을 주는 것이다. A당이 지역구에서 5명만 당선된 경우 나머지 55명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식이다. 문제는 이 제도를 시행할 방법은 단 두 가지, 그나마 하나는 아예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재 300명 중 253명인 지역 국회의원을 50명가량 줄이거나 의원 정원을 50~60명 늘리는 방법이다.

지역구 의원을 줄이는 방안은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치권 한 인사는 “지역구 의원 50명을 줄이는 것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왕적 당 총재를 할 때도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 국회의원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이 의원 수 확대에 반대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왜 우리가 그런 욕까지 먹어가면서…”라며 뒷걸음질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더 큰 걸림돌은 선후가 뒤바뀐 채 진행되는 선거제 개편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 야 3당, 특히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에서 들고나왔다. 일하는 국회, 지역구도 타파 등의 정치개혁을 화두로 내걸고 뼈를 깎는 국회 쇄신책을 내놔도 공감대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마당에 ‘총선 생존용’으로 화두를 꺼낸 것이다. 번지수가 한참 잘못된 셈이다. 이런 난관을 모두 뚫고 과연 여야가 1월까지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제 개편 논의가 ‘손학규 일병 구하기’ 성과에 그칠 공산이 큰 이유다.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