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현장의 대통령을 보고 싶다
“현장에서 체감해 보니 어떤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른가? 솔직하게 좀….”(문재인 대통령)

“남편 말을 빌리자면 ‘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좀 더 잘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용부 서기관)

“일단 소상공인들은 어려움을 굉장히 많이 호소하고 있는 건 맞다.”(고용부 과장)

“통계청 원자료를 갖고 실직한 일용직들을 면접 조사해서 (실직) 원인이 뭔지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최저임금이 지금 속도로 나아갈 수 있을지, 조정해야 할지 알 수 있지 않나.”(문 대통령)

지난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때 문 대통령과 고용부 직원들이 주고받은 대화다. 날로 악화되고 있는 고용상황에 대통령이 오죽 답답했으면 고용부 실무자를 붙들고 ‘솔직하게 좀’ 얘기해 달라고 했을까 싶다. 이 대화를 들은 국민들 가슴은 답답하다 못해 콱 막혔을 것 같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 밑바닥 일자리부터 없애고 있다고 언론에선 수도 없이 지적했다. 한데 대통령은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빠르냐’고 묻고 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대통령을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시켜 놓는 청와대 구조다. 일단 위치가 일반인 왕래가 거의 없는 경복궁 뒤편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은 수석비서관 등이 있는 비서동과 500m나 떨어져 있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려면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한다.

프랑스 대통령의 엘리제 궁, 일본 총리의 집무실이 일반 차도에 바로 붙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거리와 소통은 반비례 관계다. 대통령이 일반 국민은 물론 참모들과도 동떨어져 있으니 충분한 소통이 될 리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불통과 ‘유체이탈 화법’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것도 그래서다.

대통령에게 경제 현실을 제대로 전해야 하는 참모들도 문제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최근 세미나에서 “모든 것이 위기라고 하면서 개혁의 싹을 자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 등에 대한 정책 비판을 적폐 세력의 반발쯤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대통령이 현실을 올바르게 읽을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그나마 현장에 다가가려고 애써왔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겨 국민에게 가까이 가겠다고 대선 때 공약했다. 취임 이후엔 본관이 아닌, 비서동에 있는 집무실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경호 문제 때문에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참모들과의 거리를 좁힌 것도 큰 도움은 안 돼 보인다. 주변 참모들이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하기보다 이념형 개혁에 몰두해 있어서다.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거시지표는 탄탄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들과 괴리된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불통의 벽을 높이고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돌덩이가 된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지난 17일 주재한 것을 계기로 경제를 더 챙기기로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기왕에 챙길 거라면 밑바닥 민생 현장부터 확실히 파악하길 권한다. 언론을 통해 전해진 국민 목소리가 미심쩍다면 직접 국민들을 만나 들어봐도 좋다. 단 참모들이 엄선한 국민이 아니라 거리의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거친 목소리에 귀를 열기 바란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시간 날 때마다 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 남구로역의 새벽 인력시장, 노량진 공시촌의 컵밥집, 종로 뒷골목의 식당을 대통령이 불시에 방문해 보면 어떨까. 경호상 어렵다면 청와대 앞 편의점에라도 가서 알바생으로부터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근로시간 강제 단축이 서민들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들었으면 한다. 그게 공무원들로부터 에두른 현장 보고를 받는 것보다 백 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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