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국가는 가장 크고 非도덕적인 집단"
참혹한 첫 번째 세계대전(1914~1918)을 겪은 뒤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류의 이성을 계몽하고 합리성을 함양하다 보면 더딜지라도 ‘이상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라인홀드 니버(1982~1971)가 1932년 내놓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오랜 전통의 ‘이성중심적 낙관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저작이다. 그는 “개인이 도덕적·이타적이더라도, 그들이 모인 사회는 구조적으로 비도덕적·이기적으로 타락한다”고 봤다. ‘이성의 시대’가 올 것이란 ‘헛된 망상’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마치 예언처럼 책 출간 이듬해 히틀러 집단이 집권하고, 최악의 두 번째 세계대전이 이어졌다. 니버는 주목받았고, 그가 태동시킨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추종자들에 의해 ‘소련 봉쇄정책’으로 구체화돼 냉전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모든 현실주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모두 도덕적이어도 집단은 비도덕적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새로운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니버는 ‘공동체는 정의와 사랑의 장소며, 역사는 진기한 창조물로 가득하다’는 통념을 거부한다. “비도덕적인 사람이 많아 세상이 어지럽고, 이들을 교육하면 도덕적 사회가 올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라고 몰아붙였다. 개인은 교육과 훈련으로 이성과 정의감을 키울 수 있지만, 사회나 집단에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사회는 구성원의 이기심과 집단 내 권력 간 상호작용에 의해 집단이기주의로 치닫게 마련이며,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 집단 내에서 발휘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그는 “집단의 이기심은 공권력이나 다른 집단의 이기심에 의해서만 견제가 가능하다”며 “현대적 낙관주의는 사회적·도덕적 진보에 대한 순진한 믿음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성은 집단 내 문제 해결에서 무력하다는 게 니버의 견해다. “이성보다는 충동이 근본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특히 집단 속 인간은 충동에 훨씬 강하게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권력 불균형에 의한 사회적 갈등은 그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해소될 수 없다고 했다. 합리주의자들은 타협과 조정이 사회 정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지만, 역사는 이성적이지 않은 세력들에 의해 움직인다는 지적이다. “집단 간의 관계는 윤리적이기보다 정치적이며, 각 집단이 갖는 힘의 비율에 따라 정해진다.”

신학자이기도 했던 니버의 이상주의 비판은 종교에도 꼭 같이 적용됐다. “종교적 전망은 집단의 이기심에 대한 이해결여 탓에 실현되기 힘들며, 합리성을 제고하고 종교적 선(善) 의지의 성장을 통해 세상을 진보시키려는 노력은 도덕적·정치적 혼란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계급 인종 민족 등의 큰 사회집단은 구성원에게 강력한 충성심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개인은 도덕적 판단에 필요한 통찰력이 부족해 자신이 속한 사회의 도덕적 의견을 수용한다는 게 니버의 견해다. 도덕적 사회를 만들려면 개인의 도덕심보다 사회구조적 개선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가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비도덕적 집단으로 지목한 것은 국가다. 국민의 애국심에 기댄 국가의 이기심이야말로 비도덕의 전형이라고 봤다. 고차원적 이타심인 맹목적 애국심 덕분에 국가는 도덕적 제한 없이 권력을 무제한으로 휘두를 자유를 갖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런 역설을 “개인의 이타성이 국가의 이기성으로 전환된다”고 표현했다.

‘사회의 비도덕성’을 제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민족국가를 꼽았다. 민족은 자신의 이해를 감춘 지배자의 교묘한 감정적 자극에 반응하며 집단이기심을 충족시켜간다고 봤다. “개인의 이타적 열정이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 바뀌기는 쉽지만, 인류 전체를 향한 열정으로 승화하기는 힘들다. 인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이 너무 막연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영구적 전쟁상태에 있어

결속력 강한 계급집단이 종교·문화·인종·경제 집단 등을 제치고 향후 국가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배 계급의 가장 큰 특징은 위선이라고 꼬집었다. “지배 계급은 자신의 특권이 보편적 이익에 봉사한다는 증거와 논증 확보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니버는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신의 이타심을 조금이라도 국가의 이타심으로 전이시키려면 정치를 장악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정의를 달성하기 힘들며, 정치사회는 강제력을 통해 지속된다”는 것이다. 또 평화는 힘에 의해 획득되고 유지되기 때문에 항상 불안정하다고 봤다. “힘을 가진 계급이 한 나라를 조직하는 것처럼, 국제 사회를 조직하는 것도 힘을 가진 나라들이다. 평화는 잠정적이며 세계는 영구적인 전쟁 상태에 처해 있다.”

그는 “강제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 사회의 처절한 현실”이라며 최소한의 폭력을 용인하는 논쟁적 해법을 제시한다. “다가올 세기의 과제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강제력을 최대한 비폭력적 모습으로 귀결시킨 사회의 건설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