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연구진이 임상시험 참여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제공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연구진이 임상시험 참여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제공
글로벌 4위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 자회사인 얀센은 2년 전 폐암 신약의 글로벌 임상을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미국 유럽 등 의약품 시장 규모가 큰 지역을 우선시하는 관행을 깬 것이다. 한국얀센 관계자는 “국내 임상 환경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국내에 이어 미국 대만 등으로 임상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얀센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 임상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환자들이 신약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도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국가 임상 건수, 10년 새 2배 ‘껑충’

국내에서 이뤄진 다국가 임상시험은 2007년 148건에서 지난해 299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다국가 임상시험은 제약사가 개발한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2개국 이상에서 하는 글로벌 임상시험이다. 다국가 임상시험에는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다국적 제약사가 주도한다.

얀센, 한국서만 폐암 신약 임상하는 까닭은
한국은 항암제 임상시험에서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이뤄진 항암제 임상 251건 가운데 60%가 넘는 153건이 다국가 임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면역항암제 옵디보와 키트루다 임상이다. 두 항암제의 다국가 임상 지역에 한국이 포함됐다. 이 덕분에 옵디보와 키트루다는 국내에서 2016년 4월 판매 허가가 났다. 미국보다 각각 13개월, 6개월 늦었지만 임상국에 포함되지 않은 중국보다 2년 이상 빨랐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 관계자는 “앞선 의료기술과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 역량 등을 인정받아 초기 임상에 한국이 포함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며 “국내 환자들이 최신 신약을 더 빨리 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임상 환경 ‘세계 최고’ 수준

국내 임상 환경의 경쟁력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가별 의약품 임상시험 프로토콜 건수 기준 한국은 지난해 전체 7865건의 3.51%를 차지해 6위를 기록했다. 주요 상급종합병원이 몰려 있는 서울은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의료진의 임상 수행 능력이 뛰어난 데다 대형병원이 밀집돼 있어 환자들이 찾기 쉽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1000병상 이상인 병원이 도시 한 곳에 이렇게 몰려 있는 곳은 세계에서 흔치 않다”고 했다.

국내 임상 경쟁력이 높아진 데는 임상 인프라 확립과 제도 개선에 나선 정부도 한몫했다. 2004년 지역별로 15개의 임상시험센터를 세워 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다국가 임상시험을 유치하기 위해 2012년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병원을 임상시험 글로벌 선도센터로 지정했다. 임상 수행 품질을 높이기 위해 종사자 교육을 의무화하고 관련 서식을 표준화하는 등 제도 개선도 했다. 지난 3월에는 범부처 임상시험 지원책이 포함된 ‘제2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도 내놨다.

임상 전문가 육성 등 과제도 산적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임상 승인에 걸리는 시간이 선진국보다 길고 임상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유럽 등에선 2주에서 한 달 걸리는 임상 승인이 국내에서는 2~3개월이 소요된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의 평균 연구인력은 지난해 기준 54.6명이지만 국내 제약사는 25.9명으로 절반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임상시험 환경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인진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임상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임상 전문 인력 육성이 필수적”이라며 “임상 전략을 잘 세울 수 있는 임상 약리학 전문가를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