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들의 아빠와 내 아버지
얼마 전 결혼 1주년을 맞이한 직원 부부를 점심에 초대한 적이 있다. 1년 전 이들 부부는 내게 주례를 부탁했다. 주례는 정말 어렵고 조심스러운 역할이기 때문에 나는 피할 수 없는 사이가 아니면 최대한 사양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서울회생법원 개원을 위한 업무로 인연이 된 사이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어 흔쾌히 주례를 맡았다.

주례를 설 때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역시 주례사다. 신랑과 신부에게 하는 말이면서 모든 하객에게 하는 말인데, 특별히 모범적인 남편이나 아버지라고 할 수도 없는 내가 어떤 말을 할지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나는 주례를 준비할 때 우연한 기회에 듣고 깊이 공감했던 가정 전문가의 이야기 하나는 꼭 포함시킨다. 결혼하게 되면 자녀를 갖기 전에 좋은 부모가 될 준비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의 역할과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부모가 돼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나와 아내 사이에서 장성해 결혼한 내 아들 부부에게는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저 화목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말 정도로 당부하고 말았다. 그래도 책임이 무서운지 아들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법 잘하는 것 같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를 위해 헌신하셨던 부모님의 모습,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의 일상 등이 겹치곤 한다.

중학교 이후의 내 학우나 지금의 지인들은 믿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 나는 매우 허약해 부모님의 애를 많이 태웠다. 어머니는 수시로 나를 업고 고갯마루에 사는 무면허 의사에게 뛰어가셨고, 아버지는 많은 밤을 지새우셨다. 그러다 보니 또래 아이들이 밖에서 즐기는 여러 놀이에 동참할 기회도 많지 않았고, 부모님도 다칠 것을 염려해 놀러 나가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런 내가 어느 해 겨울 연날리기를 하게 해달라고 무척 졸랐던 모양이다. 한밤중에 불빛을 느껴 눈을 떠보니 어머니는 물레를 돌려 연줄로 사용할 실을 잣고, 아버지는 연줄을 감는 두 발 달린 자새를 만들고 계셨다. 잠결에 얼핏 본 호롱불 방안의 장면이지만 두 분의 모습은 또렷이 새겨진 내 마음속의 그림이고, 언젠가는 꼭 화폭에 옮겨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다. 이런 기억들은 일을 핑계로 아내에게만 모두 맡긴 채 아이들을 많이 보살펴주지 못했던 지난날을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게 한다. 이런 미안함으로 가끔 아들에게 하는 자랑이 있다. ‘정말 미안하지만 네 아빠보다는 내 아버지가 훨씬 훌륭하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