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복합 등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새로운 가치와 영역을 창출해 내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산업세계에서 ‘경쟁자’ 개념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서비스회사 구글이 지난주 세계 첫 자율주행택시 상용 서비스를 치고 나가면서 GM,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을 ‘한 방’ 먹인 게 단적인 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쟁자가 뛰쳐나올지 모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에 관한 한 국경의 존재가 더욱 무의미해졌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은 자국을 넘어 전 세계 유통시장을 휘젓고 있다. 이런 시대에 ‘기존 사업자’나 ‘기득권’ 등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 관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와 서비스를 고민하고 열어 나가는 게 이 시대 앞선 기업과 국가의 특징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조차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과 핵심을 제대로 공부하고 포착해 신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는 일단 해보라. 일정 기간 지켜보고, 그냥 둬서는 안 될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가서 손본다’는 선(先)허용-후(後)규제 원칙을 내세워 인터넷뿐 아니라 드론, 차량공유 등의 분야에서까지 세계적 기업들을 길러내고 있다.

이런 장면들을 보다 한국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숨과 자괴감을 넘어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절로 커진다. 카카오가 택시업계의 강한 억압과 정부의 미적지근한 대응이라는 이중장벽에 맞서 카풀 사업 강행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절규를 담은 몸부림으로 봐야 할 것이다. 카카오처럼 장벽과 맞서 부딪쳐주기라도 하는 기업이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헬스케어 등 신산업 분야에서는 겹겹의 규제 장벽 앞에서 국내 사업을 포기하고 해외로 떠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업역과 국경 구분이 사라진 무한경쟁 시대에서 ‘기존 식구들’의 ‘철밥통’을 지켜주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세금과 일자리의 원천인 기업들 싹을 자르고 밖으로 내몰아 남의 나라 배를 채워주는 것은 자기파괴적 집단자해요, 반국가적 범죄행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기술패권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중 통상전쟁 와중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IT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국가 차원의 ‘미래기술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로드맵을 논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온갖 견제와 압박 속에서도 ‘중국제조 2025’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핵심 미래기술 주도권을 쥐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발로일 것이다.

우리나라 지도자와 정치인, 공무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고(高)비용 구조, 노조 리스크, 규제장벽 탓에 한숨을 쉬다 마침내 체념하고 포기하거나 아예 한국을 떠나는 기업가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온 나라가 김정은 서울 방문에 왈가왈부하며 날을 지새우고 있다. 미래에 눈감고 ‘과거의 적’들을 망신주고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이른바 ‘적폐청산’ 광풍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7개월 넘게 몰아치면서 또 한 명의 장군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붙였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