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20년까지 추진할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어제 내놨다. 올해 출산율이 처음 1명 아래로 떨어질 게 확실시되면서 ‘2020년 출산율 1.5명 달성’이라는 기존 정책목표를 전면 수정한 것이다.

‘고(高)비용 무(無)효율’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194가지 백화점식 대책을 35개로 줄인 것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 가능성이 보인다. ‘현금살포 지원’도 줄어들기는 했으나, 새 로드맵 역시 재정 동원을 통한 출산율 올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동수당 확대, 미취학 아동 의료비 전액지원, 다자녀 혜택기준 완화 같은 방안이 그렇다.

문제 인식부터 대책 수립까지 저출산 패러다임 자체를 확 바꿀 때가 됐다. 무엇보다 ‘돈(재정)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저출산 대책의 새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젊은 세대의 만혼·비혼·출산 기피 경향은 큰 기류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신 외국인 산업연수생이나 이민자에 대한 문호 개방, 좀 더 적극적인 다문화정책, 여성 및 고령자 경제활동 확대 유도 등으로 경제활동인구를 유지해 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자면 대한민국이 국제적 기준에서 ‘살고 싶은 매력 국가’가 돼야 한다. 적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으로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그렇게 가는 지름길이다. 결혼·동거, 출산·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권한 부여도 좀 더 포용적으로 갈 필요가 있다.

그간의 저출산 대책이 작동하지 않았던 원인에 대해 냉철하게 돌아보는 ‘실패백서’를 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2006년 이래 5년 단위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오면서 150조원 이상을 투입해왔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최악의 초(超)저출산 국가가 됐다. 12년간 실패기를 작성해보면 근본 원인 파악과 함께 진짜 해법도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