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혁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 같은 합의는 무역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질서를 유지할 누군가의 중재가 절박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합의 자체가 아니라 개혁의 방향일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G20 정상들에게 무역 갈등을 완화하고 관세 인상을 철회하라고 촉구했지만, 그런 역할을 하라고 만들어진 WTO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현재 WTO 무역분쟁 해결 기능만 해도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나 다름없다. 미국이 분쟁해결기구의 새로운 위원 선임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WTO가 절름발이가 된 배경에는 국가 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다. 미국은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WTO 의사결정이 자국에 해로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식한다. 한 회원국만 반대해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WTO 의사결정제도도 불만이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중국은 미국의 관세 공격에 WTO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무역전쟁의 휴전을 선언한 미국과 중국이 WTO 개혁 방향을 놓고 또 한 번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EU), 일본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WTO 개혁을 이끌려고 할 건 불 보듯 뻔하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WTO 정상화가 시급한 이유가 많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는 반덤핑·상계관세 부과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고 있고, 중국으로부터는 지식재산권 침해, 노골적인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EU FTA, 한·중 FTA 등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기준을 동원한 일방적인 보호무역 조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다. 당장 WTO 분쟁해결기구부터 제 기능을 찾지 않으면 마땅히 호소할 곳도 없다. WTO 개혁을 둘러싼 주요국들의 ‘동상이몽’ 속에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관철할지, 또 하나의 과제가 던져졌다. 통상당국의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