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청와대는 경제위기론이 불편한가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들고나오면서 “국가비상 상태”라고 했다. 위기이기 때문에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런 정부가 위기론이 터져나오자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엔 ‘저성장 위기론’을 펴며 각자도생을 주문하던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한술 더 떴다. “모든 게 위기라면서 개혁의 싹을 자르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이쯤 되면 위기론도 ‘내로남불’이라고 해야겠지만, 경제를 보는 청와대 인식이 단순하고 편향적인 게 더 걱정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3.1%를 근거로 “이게 위기냐”고 반문하는 것부터 그렇다. 학자들에 따르면 경제위기의 원인은 다양하다. 경기 상승기에도 위기가 들이닥칠 가능성이 있다. 성장률이나 경기변동 관점에서만 위기 여부를 따지던 시대는 지났다.

위기 발생과정을 바라보는 청와대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해관계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위기설’을 유포한다는 식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경제의 복잡성을 간과한 채 모든 위기론을 기득권의 저항으로 몰아가는 건 위험하다. 경제를 이끄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위기론을 바라보다가 진짜 위기 신호를 놓치면 그 자체로 무능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5%로 낮추고 내년 성장률은 2.3%로 전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외 환경이 미·중 무역갈등과 미국 금리 인상으로 올해 들어 악화됐는데, 국내의 정책적 불확실성이 외부의 부정적 효과를 더 강화하고 있다.” 무디스는 정책적 불확실성 요인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법인세 인상 등을 꼽았다.

청와대는 무디스의 비관적인 성장률 전망이 원망스럽겠지만 주목해야 할 건 따로 있다. 내·외부 요인 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살피면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충격보다 내부 취약 요인을 더 중시하는 무디스의 관점이다. 외환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라라면 이런 관점은 기본일 텐데 청와대 시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청와대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이것만이 아니다. 무디스가 내부 취약 요인으로 지적한 정책적 불확실성은 경제위기 측면에서 볼 때 상당한 함의를 담고 있다. 정책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살아남으려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행위들이 경제 전체로는 위기를 초래하는 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외부 충격이나 경기변동과 상관없이 말이다. 실제로 경제위기를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지 않은 데 대한 응징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 점에서 ‘유능한 정부’와 ‘무능한 정부’는 어쩌면 경제위기 국면에서 판가름난다고 볼 수도 있다. 유능한 정부라면 위기 징후가 보이는 즉시 정책적 불확실성 등 내부 취약 요인을 고쳐나가는 쪽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유능함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는 그럴 수 있을까.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가 중간에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지지계층을 상실해 정권을 잃었다는, 이른바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당위론으로 가득찬 정책들을 움켜쥔 채 국민에게 “기다리면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오기를 부리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이 얼마나 심하면 탈원전을 취소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는 그래도 나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몰라보고,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생긴 곤경을 알아보지 못하고, 훈련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진 후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인정한다.” ‘더닝-크루거 효과’가 말하는, 능력 없는 사람들의 경향이다. 이런 사람들이 경제를 이끌면 어찌 되겠나.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