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내부자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인간이라고 답하겠지만 숫자와 존재의 역사로 보면 각종 세균을 포함한 미생물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것이 겨우 300만 년 전이라면 세균들은 지구 탄생 초기인 40억 년 전부터 존재했다. 이들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구상에 약 60억 명의 인간이 살지만 한 인간의 몸속엔 인체 세포 수의 1~3배인 40조~100조 마리에 이르는 1000여 종의 세균이 살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부르는 인체 세균총은 장내에 가장 많이 있고, 온몸 곳곳에도 살고 있다. 몸속 세균을 무게로 치면 1.5㎏, 간 무게와 비슷하다. 수십조 개 이상의 생명체가 우리 몸속의 ‘내부자’로 존재하는 사실은 신기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이 세균들이 우리의 건강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장내 세균은 당뇨병, 아토피, 염증성 장염, 자가면역질환,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 암 등 그동안 원인을 모르던 많은 질병의 발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흔히 체질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장내 세균과 연관돼 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사람은 장 속에 있는 일명 ‘뚱보균’이 늘어난 것이다. 반대로 프레보텔라라는 ‘날씬균’이 늘어나면 살이 찌지 않는다. 동물실험에서 뚱보균을 날씬한 쥐에 넣으면 바로 살이 찐다. 장내 세균이 조절되지 않으면 다이어트가 소용이 없다.

이 원리를 이용해 난치성 장염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넣어주면 장염도 좋아질 수 있다. 최근에는 ‘분변이식(FMT)’을 이용해 각종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자폐증 아이에게 건강한 대변을 이식했더니 증상이 좋아지더라는 보고도 있다. 최근 연구 결과 장내 세균은 면역 기능과도 직결되며, 항암 치료 효과도 좌우한다.

2007년부터 미국 주도의 인체미생물 프로젝트(HMP)를 필두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바이오산업도 각광받고 있다. 유익균 자체를 공급하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유익균의 먹이를 제공하는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는 이미 시장 규모가 엄청나다. 이 밖에도 유익균의 대사산물을 이용하는 포스트바이오틱스(postbiotics) 등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신약 개발만 180건 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 몸속 ‘내부자들’이 바로 신약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이들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평생을 함께하는 인생의 동반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세균들과 잘 지내는 것이 오래 건강하게 사는 또 다른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