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밀어붙이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간판 기업 7곳이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경이 한국경제연구원과 유가증권시장 상위 30대 기업을 분석한 결과 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가 시행되면 7곳의 이사진 절반이 투기자본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됐다. 네이버, 셀트리온, KB금융지주,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KT&G, 삼성SDI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감사위원을 다른 사내외 이사와 분리해 뽑는 한편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대주주가 아무리 지분율이 높아도 3% 미만 지분을 가진 외국 투기자본들이 연합하면 그들이 원하는 사람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 역시 투기자본들이 힘을 합해 특정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공간이 생긴다. 이렇게 해서 외국계 투기자본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7개로 파악된 것이다.

상법 개정안을 마련한 당정이 이런 가능성을 알고나 있는지, 한 번이라도 검토는 해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개정안 취지를 설명한다며 엊그제 경총을 찾았지만 법안 마련에 앞서 기업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어야 마땅하다. 더 답답한 것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는 선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집중투표제는 일부 국가만 도입했고 미국 일본 등은 한때 시행했다가 부작용 때문에 지금은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런 제도들을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한다’며 한꺼번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엊그제 기업애로 사항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면서 “한국은 유례없는 갈라파고스 규제국가”라고 쓴소리를 했다. 상법 개정안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기업환경을 제대로 꼬집은 말이다.

우리보다 앞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선진국들이 “해봤더니 안 되겠더라”는 값비싼 깨달음을 얻고 철회한 ‘기업 지배구조 간섭’ 실험을 불문곡직 밀어붙이겠다는 정부 여당의 모습은 ‘오기’를 넘어 ‘무책임’의 극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기업을 코너로 몰아 투기자본 배만 불려준다면 상법 개정은 도대체 누굴 위해 하는 것인가.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