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GPS 주도권 경쟁
‘하늘로 쏘아 올린 나침반’이라고 불리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원래 군사용이었다. 미국 국방부가 1973년 미군 통합 항법시스템으로 확정한 ‘내브스타(NAVSTAR)-GPS’가 시초다. 적군 위치 파악과 미사일 유도 등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GPS 시스템은 6개의 우주궤도에 위성을 4개씩 배치해 지구 어느 위치에서건 대상물의 위치와 시각 정보를 제공한다.

GPS가 민간에서 쓰이게 된 계기는 269명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사건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항공기 운항은 비행체의 가속도를 기준으로 위치를 추정하는 관성항법장치(INS)에 의존했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 장치의 고장으로 여객기가 소련 영공으로 들어간 것으로 드러나자, GPS를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GPS는 교통, 재난예방, 측량 등 각종 산업과 생활에 필수적인 정보 시스템이 됐다. 온·오프라인 연계(O2O), 5G, 사물인터넷(IoT) 등 차세대 통신서비스는 물론 자율주행차, 드론 등 무인 이동체 개발의 기반 기술이다. 문제는 미국이 전쟁 등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GPS 접속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GPS를 갖지 못하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요 국가들이 자체 GPS를 가동하고, 여러 나라를 자신의 ‘GPS 권역(圈域)’에 편입시키려고 하는 이유다.

러시아는 1995년부터 ‘글로나스(Glonass)’ GPS를 운영 중이다. 24개 글로나스 위성이 전 세계를 커버한다. 2000년부터 ‘베이더우(北頭)’라는 GPS를 구축해 온 중국은 2012년 아시아·태평양으로 GPS 운용 범위를 확대했다. 2020년까지 90억달러(약 10조1500억원)를 투입해 글로벌 GPS를 완성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2016년부터 전 세계를 포괄하는 ‘갈릴레오(Galileo)’ GPS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인도와 일본은 자국과 주변 국가들을 범위로 하는 ‘지역 GPS’를 구축하고, 위치 정보 정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주요 열강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GPS 각축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7년 뒤에나 ‘GPS 주권(主權)’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는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따라 2035년까지 2조3000억원을 투자해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을 구축할 예정이다. 2024년까지 GPS 위성 탑재체(搭載體) 기술을 개발하고, 2028~2034년 GPS 위성 7기를 발사할 계획이다.

관건은 꾸준한 투자다. 각종 복지 사업 등에 밀려 예산을 제때 배정하지 못하면 ‘GPS 독립’은 요원해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반기술 확보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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