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국회파행과 불효자 10년
매년 12월이 되면 달력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다. 왜냐하면 1973년 돌아가신 아버님의 기일(忌日)이 12월2일인데, 이날이 바로 정기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법정시한이기 때문이다. 언뜻 아버님 기일이 새해 예산안 처리시한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쉽게 이해 가지 않겠지만 국회를 출입했던 정치부 기자 10년 동안 이날이 되면 남모르게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1979년부터 정치부 기자로 발령을 받자마자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제명 사태에다 부마(釜馬)사태, 10·26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동에 휘말렸다. 이후 1988년 13대 총선거 때까지 10년 동안 정치부 기자로서 야당과 여당을 번갈아 출입하며 줄곧 국회를 취재하는 ‘행운’을 잡았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이 행운 뒤에는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고통이 늘 따랐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정치부 기자로서 사명감과 자식으로서 의무감 사이에서 겪어야만 했던 심각한 갈등이 바로 12월2일 밤 아버님 제사(祭祀) 참석 문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간 아홉 차례의 아버님 제사 가운데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단 두 번뿐이었다. 바꿔 말하면 일곱 차례나 참석하지 않은 불효자가 돼버린 것이다.

매년 12월2일 밤만 되면 어김없이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는 여야가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인 양 물리적으로 정면충돌하고야 마는 파행적 모습이 되풀이됐다. 이런 ‘꼴불견’을 보기 싫어도 지켜봐야 하는 출입기자로서 총무회담장과 계수조정소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회의장 등을 숨 가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오곤 했다. 당시 속된 말로 ‘올빼미 국회’로 날을 새고 여의도 해장국집에서 동료 기자들과 아침을 먹을 때 아무도 모르게 나만이 느껴야만 했던 것이 바로 불효(不孝)에 대한 자책과 허탈감이었다.

“왜 하필이면 아버님 기일이 새해 예산안 법정처리시한과 같은 날이어야 하는가?” “왜 우리 정치는 여야 간에 극한대립과 소모적인 정쟁을 되풀이해야만 하는가?” “정치부 기자를 언제 그만두고 효자 노릇을 해볼 수 있나?” 등 부질없는 상념에 빠졌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럴 때마다 제사를 치른 형님들의 격려전화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제사에도 참석 못하고 밤새 취재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지하에 계신 아버님도 우리나라 공영방송을 위해 밤새우며 역사의 현장을 지킨 막내아들의 활약을 보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해주는 말을 듣고 나면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활기를 되찾고 또다시 취재현장으로 향하곤 했었다. 30년이 지난 올해에는 국회에서 새해예산안을 법정처리 시한에 과연 처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