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부는 만능이 아니다
진보 성향 정부 출범 이후 각 분야에서 정부 개입이 강화되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채용을 대폭 늘리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도 강행했다. 정부 및 공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서둘러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법령으로 강제하고 있다. 아파트 가격, 카드 수수료 등 각종 제품 및 서비스 가격까지 간섭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 개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실업이 늘고 소득 양극화가 심해진 원인이 경제활동을 지나치게 시장 기능에 맡겼기 때문이라고 인식해서다. 그럼 이들 문제는 정부 개입 확대로 해결되고 있는가.

첫째, 정부의 섣부른 개입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임금이 올라가려면 경제가 활성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성 등 기업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주 52시간 근로제 등 기업 현실을 무시한 정책을 강행하면서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되는 추세다. 기업 여건 개선 없이 규제만 늘어나니 일자리 창출은커녕 기존 일자리마저 줄어든다. 편의점·식당 아르바이트, 아파트 경비원 등이 해고되고, 인건비 절감을 위한 자동화와 함께 기업의 해외 이전이 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3분기 가계소득동향을 보면 저소득층 소득이 23% 줄어 경제 양극화는 더 악화됐다. 대학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월급 인상과 신분 보장을 강화하는 대책을 추진 중인데 재정 사정이 어려운 대학은 되레 시간강사를 대폭 줄여 이들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념에 치우쳐 시장 기능을 무시한 정부 개입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민간은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데 비해 공직자는 사심 없이 공익을 위해 헌신하므로 정부는 민간보다 더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런가. 대부분 공직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다. 그러나 공공 부문은 구조적으로 경쟁도, 주인정신도 없고 도산 염려도 없어 무책임, 비효율의 가능성이 민간보다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정부·공기업이 민간기업보다 비효율적이다. 예컨대 매출 1조원이 넘는 공기업 사장이 인력을 구조조정해 수백억원의 경비를 절감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겠나. 직원들에게 비난만 받고 정권이 바뀌면 어차피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거액의 부채가 있는 서울교통공사는 고용세습 비리에 더해 경비절감을 위한 무인운전·무인역사 도입도 못하고 있다. KBS는 전 직원의 50% 이상이 간부급으로 억대 연봉자인데 구조개혁 노력은 없다. 농촌 인구 감소로 강원도의 어떤 학교는 학생 수가 30명인데 교직원은 32명이다. 쌀은 생산과잉인데도 구조조정을 게을리해 수매가격의 10분의 1 수준에 사료용으로 매각, 지난 3년간 1조8000억원의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 일부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학부모가 선호한다는 이유로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수요자가 원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해질까.

무분별한 정부 개입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공무원이 늘어나면 자신의 권한 확대를 위해 규제를 늘리고 재정지출도 확대할 것이다. 민간이 요긴하게 쓸 돈을 거둬 정부나 공기업이 비효율적으로 쓰면 경제는 더 어려워진다. 실제로 지난 3분기 가계의 세금, 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이 23% 늘어난 결과 실질 가처분소득은 1.3% 줄어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물론 정부 재정 활동이나 규제가 모두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국방·치안·외교·도로·철도 등 인프라 건설, 복지제도 등 민간부문이 할 수 없는 분야는 국가가 맡아야 한다. 기업 활동에도 소비자 보호, 안전, 환경보전 등 규제가 필요한 부문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데 주력하고 직접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큰 정부보다 효율적인 정부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 개혁, 공기업 개혁 등 정부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옛 소련과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북한은 강력한 국가 개입주의로 인해 못살게 됐다. 정부는 항상 선한 것도 아니고 만능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