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칼럼] 산업부, 기업의 대변인 돼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정부 부처 중에서 ‘좀 수상한 부처’가 하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부처는 바로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였다. 아마 정부 업무로서는 성격이 딱 떨어지지 않고 업계와 깊게 유착돼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산업자원부 직원들은 긴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그런 생각과 의심은 임기가 흘러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산업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 원전 폐기물 처리장 설치 등 복잡한 갈등 현안을 해결하고,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 경제적 성과도 내면서 수출과 제조업 분야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 민간 경제가 글로벌 최상위권인데 무슨 산업정책이 필요하냐는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산업부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부조직 개편의 첫 번째 대상이 돼 핵심 기능이 떨어졌다 붙었다를 거듭했다. 지금은 중소기업 정책이 아예 다른 부처로 분리돼 나갔다.

산업부는 여러 번 명칭이 바뀌었지만 그 뿌리는 상공부다. 한국의 수출 주도 성장과 중화학공업·전자산업 등 우리나라 먹거리 밭을 일구고 에너지 수급 안정을 이룬 부처다. 우리가 겪은 두 번의 경제위기를 수출을 통해 극복하는 데도 확실한 역할을 했다. 산업부 관료들은 조선소에 현재 몇 척의 배가 건조 중이고 자동차가 그달에 몇 대가 통관 대기 중이며 반도체 장비의 핵심 애로 기술이 무엇인지 꿰뚫고 있었다. 또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느 지역에 교두보를 세워야 하고, 유럽의 새로운 수입 규제와 미국과의 통상마찰 실체는 무엇이고,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어떻게 한류를 활용할지 줄줄 읊을 정도였다. 그것이 실물경제이고 소위 미시경제인 것이다. 산업부의 강점은 이런 실물경제의 디테일과 맥을 짚고 사례를 많이 파악하고 있으며 기업인들과 최소한 대화라도 통했다는 데 있었다. 기업인들은 산업부를 그나마 자신들의 말귀를 알아듣는 유일한 부처라고 생각했다.

산업부가 정책수단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외지향적 성장기를 움직인 세 축은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였다. 세 부처의 수장을 모두 경험한 어느 분은 “경제기획원은 영예롭고(honorable), 재무부는 힘이 있고(powerful), 상공부는 다채롭다(colorful)”고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산업 분야와 국내외 시장에서 구석구석 깊이 있게 많이 아는 것이 산업부의 힘이었다. 그래서 다른 힘이 있는 부처들과 대등하게 어깨를 견주며 기업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 산업부는 과거의 영광에 대한 저주였는지 기세가 위축되고 목소리에 힘을 잃었다. 존재감이 약해졌고 기업에서도 산업부 회의라면 형식적으로 대리 참석을 하기 일쑤다. 그러던 산업부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산업부에서 잔뼈가 굵은 성윤모 장관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장관이 어려운 기업 현장을 수시로 방문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내용이 있는 기업과의 회의도 많아졌다. 성 장관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기업 애로에 대해서는 끝장을 본다는 자세로 서포터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을 되찾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언급도 했다. 기업인들로서는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였을 것이다. 산업부의 힘으로 기업의 애로사항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한다고 해도 기업인의 호소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낄 것이다.

실물경제가 시시각각 어려워지고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는 듯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금 그 원인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질 여유가 없다. 세계 경제나 다른 나라 경제는 다 좋은데 왜 우리나라 경제만 이럴까 한탄할 시간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기업이 활력과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야 한다. 실물경제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해온 산업부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다. 산업부가 기업의 대변인이 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