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치적 구호의 향연인 中企 지원
중소기업으로 옮긴다는 30대 중반 제자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미국 유수 대학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후 대기업에서 해외 투자 업무를 맡았던 성실한 청년인데, 경남 창원에서 알루미늄 계열 부품을 제조하는 가업에 뛰어든 것이다. 기업금융과 세무 분야의 연구와 자문을 통해 중소기업의 척박한 환경을 잘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걱정이 컸다.

중소기업 지원은 역대 정권마다 입에 달고 사는 말의 향연인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듯이 포장은 그럴싸하지만 실속이 없다. 국민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적 구호는 화려하지만 개별 기업 사정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포용성장’으로 이어지는데, 대기업을 눌러 중소기업에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도록 압박하는 것이 요체다. 사실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는 극히 일부고 다음 단계는 중소기업이 얽힌 을(乙) 간의 갈등이다.

중소기업의 최대 현안은 자금 조달이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강요하지만 금리와 위험관리에 대한 지나친 간섭 때문에 은행의 운신 폭은 좁다. 위험이 크면 금리를 높여 대손을 보충해야 할 상황에서 중소기업 위험 수준에 걸맞지 않은 특혜금리는 수용이 어렵다. 엄격한 시장원리를 적용하면 대출이 불가능한 중소기업을 포용적 자세로 수용하려면 금융회사의 자율성이 확대돼야 한다. 중소기업 대출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이 개별 은행의 사회적 공헌을 감안해 거래 은행을 정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피땀으로 일군 기업을 자녀에게 상속하면 최고 65%까지의 높은 상속세가 부과된다. 상장 주식은 주가 고점에서 상속이 개시되면 최악이다. 상속세를 연부연납으로 미뤘다가 주가가 폭락하면 상속 주식이 빚으로 돌변한다. 비상장 주식은 직전 3개년의 순이익을 중심으로 상속가액을 평가하기 때문에 실적 좋은 시점에 상속이 이뤄지면 낭패다. 유럽과 캐나다 등의 과세이연 방식을 도입해 능력을 갖춘 자녀의 경영권을 보장하고 주식 처분 시점에 차익을 과세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의 충격은 중소기업에 더욱 심각하다. 대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은 6460만원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44%가 적은 3595만원이다. 중소기업에 주 52시간 근무를 예외 없이 적용하면 견디기 어렵다. 대기업에 비해 인력풀이 작기 때문에 운영의 탄력성이 보다 절박하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회사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개별적 합의에 의해 근로시간을 정하고 임금 산정 방식도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기술개발 주력 기업, 대기업이 제시하는 사양에 따라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 수출 제조업 및 국내 소비재 생산 기업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술개발 주력 기업은 대기업에 대한 기본적 매출 수량을 바탕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어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 견제’ 위주의 중소기업 정책은 줄이고 그룹별로 나눠 맞춤형 지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친지를 끼워 넣는 부정수급 위험이 높고 실효성도 의문이다. 중소기업 단지에 주거시설을 건설해 저가로 임대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등 실효성 높은 부분에 정부 예산을 확대 투입해야 한다.

창원 제자는 ‘스승의 날’ 즈음이면 서울로 올라와 저녁을 같이한다. 금년에는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신기술 부품을 내놨는데 불경기를 맞은 대기업이 주문량을 대폭 줄여 위기를 겪은 일을 털어놨다. 오랜 교분을 쌓은 벤처금융 책임자인 동문 선배를 찾아갔으나 거절당했는데 그 후 사정이 개선되자 그 선배가 전화를 걸어 지금도 투자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며 씁쓸해했다. 어려운 자금 사정을 먼저 감지한 회계담당자가 사표를 내고 떠나 자신이 직접 장부 정리를 맡았던 일도 털어놨다.

중소기업 경영은 피 마르고 골병드는 고난의 행로다. 정부는 정치적 제스처는 버리고 정교하고 효율적인 지원 방안을 내놔야 한다. 국민 모두가 일자리 창출 주역인 중소기업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고 따뜻한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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