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공조 허술해도 수위 높은 제재
40년 내핍에 내성 커졌지만 생활고 심해
한국에 이란은 큰 시장이란 건 기억해야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
[전문가 포럼] 이란 현장에서 지켜본 美 경제제재

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강도 이란 경제제재가 시행된 지 2주일이 지난 시점의 이란은 놀라우리만큼 안정적이었다.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0)로 차단하고 서구의 이란산 천연가스 및 석유화학제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이번 제재로 이란 정권이 약화되고 시민들의 반정부 투쟁과 시위가 격해질 것이란 전망은 어느 곳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19일, 이란 서부 아제르바이잔주의 코이시(市)에서 열린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연설 현장은 미국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극단적인 제재가 오히려 이란 국민을 하나로 묶어 현 정권을 더욱 강화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979년 혁명으로 새로 등장한 반미(反美) 이슬람정권 아래 40년 가까이 지속된 미국의 경제제재에 내성이 커진 게 분명하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묶는 새로운 동맹축으로 이란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전략에 따른 결과지만, 대(對)이란 경제제재는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미국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주(主)산업인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막더라도 이란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하고도 남는 1차 농산물을 생산하는 나라다. 나아가 1200년 페르시아제국 역사의 영화와 긍지로 똘똘 뭉친 8000만 국민을 굴복시키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이란 제재에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커다란 구멍이 처음부터 뚫려 있었다. 게다가 이번 제재는 국제사회의 공조 없이 유럽 국가들도 외면하는 미국의 일방적인 제재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어느 정도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란에서 만난 많은 이란인은 고통을 숨기지 않았다. 절대다수의 이란 국민은 현 정권이 미국과 협상을 잘해 하루빨리 제재가 풀리기를 갈구하고 있다.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해도 매일 피부에 와 닿는 생활고를 기약 없이 감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물가는 폭등하고 있다. 화폐 가치는 최근 몇 달 새 달러당 4만2000리라로 평가절하됐고, 돈을 세기 힘들 정도로 단위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초 의약품과 의료장비까지 수입이 끊기면서 인도적인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알리레자 마란디 이란 의학아카데미 회장이 최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호소문에서도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마란디 회장은 의약품과 필수 의료장비가 부족해 이란 국내 환자들이 고통을 받고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이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란 국내에서의 기본적인 삶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해외로 나간다거나 달러, 유로화가 필요한 경우에는 웬만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 와 있는 많은 이란 유학생이 자국 경제 사정과 외화 송금의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경비를 보조해주지 않으면 이란에서 학자를 초청하는 일도 힘들어졌다.

한국 기업들도 비상이다. 현재 2700여 개 기업이 이란에 진출해 있는데 수출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수입한 원유 대금을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에 예치했다가 이를 수출대금으로 결제하는 일이 가능했지만, 원유 수입 자체와 원화 결제까지 제재하는 이번 조치로 국내 기업의 이란 거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행히 외교부가 미국을 상대로 치열하고 힘든 협상을 벌여 일단 180일간의 제재 유예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수출상품의 이란 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우리 경제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미국을 설득해 180일 뒤에도 계속 제재 적용을 유예받는 게 관건이지만, 다른 수출 활로를 찾아주는 등 관련 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그래도 이란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잠재력이 큰 미래 시장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TV를 켜면 ‘대장금’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 서너 편이 동시에 방영되는 곳이 이란이고, 이란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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