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타이밍
얼마 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끝났다. 거의 모든 스포츠가 타이밍 싸움이지만 야구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으려는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은 정말 치열하다. 내가 서울회생법원에 부임해 늘 하는 생각 중 하나도 이런 타이밍에 관한 것이다. 도산 절차의 모든 영역에서 적절한 타이밍은 매우 중요하다.

판사들에게 들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면, 채무로 곤경에 빠진 사람 입장에서는 우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20대 후반에 개인회생 신청을 한 어느 여성의 사연도 적시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는 20대 초반에 학자금 대출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후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처음 받은 월급은 140만원 남짓. 그는 매월 50만원의 학자금 대출 상환금과 40만원의 월세, 10만원 정도의 저축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지고 건실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취업한 지 1년 정도 후에 했던 친구들과의 모임이 불행을 불렀다. 친구 중 한 명이 부모로부터 취업 선물로 받았다며 명품가방을 자랑하자 그는 단돈 1000원도 아끼며 사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서글펐다. 모임 직후 1년 동안 열심히 일한 자신에 대한 선물로 300만원짜리 명품가방 하나를 신용카드로 구매했다. 처음에는 저축해 둔 돈과 나머지 생활비로 신용카드 할부금을 지급했지만 곧 연체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속칭 ‘돌·고·돌·기’가 시작됐다. 다급해진 그는 처음에는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한계에 이르자 제3 금융권 고금리 대출을 받아 변제했고, 다시 대환대출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 처음에 몇백만원에 불과하던 빚은 1~2년 새 수천만원으로 불어났다. 이때라도 법원의 개인회생절차를 이용했다면 그나마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도 자체를 몰라 구제를 받지 못했다. 급기야 유흥업소 일까지 하게 됐다. 그럼에도 채무가 줄기는커녕 유흥업소 권유로 성형수술을 하면서 사채까지 사용했다. 이런 과정에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가기만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개인회생 제도를 알게 돼 늦게나마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했다.

이제 그는 직장에서 받는 월급에서 생계비를 제외한 나머지 소득으로 3년간 채무를 변제하는 내용으로 채무 조정을 받아 성실히 변제해 나가고 있다. 3년간의 변제의무만 다 이행한다면 채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타이밍 맞게 훨씬 더 빨리 개인회생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바람에 받은 극심한 고통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