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중, 수교 40년 만에 敵 되나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건지 모르겠네.”

1979년 1월1일 역사적인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말년에 친구이자 연설문 작성자였던 윌리엄 새파이어에게 중국에 대한 착잡한 속내를 이렇게 털어놨다. 닉슨은 냉전시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적국이던 중국과 손잡았다.

여기엔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언젠가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가처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나라가 될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1989년 중국 공산당이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유혈 진압한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터지면서 그의 믿음은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자유무역 외치는 중국

미·중 수교 40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 워싱턴DC에서 바라본 미·중 관계는 닉슨의 ‘불길한 예감’을 떠올리게 할 만큼 최악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중국을 공공연히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전의 빌 클린턴·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껴안은 것과는 정반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단순히 ‘무역적자를 얼마나 줄일 거냐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문제’로 바라본다. 대중(對中) 강경파로 꼽히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을 주도하는 건 이런 기류를 방증한다.

나바로 국장은 “중국은 다른 나라의 희생으로 경제를 키우는 기생충”(10월7일 폭스TV)이라거나 “중국 경제가 이익을 내는 건 다른 나라 기술을 훔치기 때문”(9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이란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에 합류하기 전부터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 《중국과의 임박한 전쟁》 《웅크린 호랑이》 같은 반(反)중국 저서로 유명해졌다.

흥미로운 건 이런 원색적인 발언이 미국인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부정적인 자유무역 옹호자들도 그런 경향을 보인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은 자유무역을 위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까지 2500억달러어치의 중국 제품에 최고 25% 관세를 매긴 데 이어 지금은 ‘관세전쟁’에서 제외돼 있는 2670억달러어치 다른 중국 제품에도 여차하면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는 데는 이런 여론이 한몫하고 있다.

美 "중국은 말 따로 행동 따로"

이 때문에 이달 29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도 미·중 갈등을 푸는 전환점이 되진 못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중국은 미국에 ‘타협안’을 제시하며 화해 제스처를 보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아직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다음날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세계는) 보호주의와 일방주의에 ‘노(no)’라고 말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하자 트럼프 대통령 대신 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중국이 그들의 길을 바꿀 때까지 미국은 행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중국이 말로는 자유무역을 외치지만 실제론 지식재산권 탈취,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이 가혹한 경제 보복을 가한 기억이 생생한 기자에게도 중국이 자유무역을 부르짖는 광경은 어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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