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한국 수출, 혁신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연간 무역액이 지난 16일 예년 대비 최단 기간에 1조달러를 달성했다. 필자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무역투자실장으로 있던 2011년에 처음으로 1조달러를 달성한 게 12월5일이었으니 20일 가까이 앞당긴 셈이다. 올해 달성한 날짜는 그간 최단 기록인 2014년 11월28일보다도 13일이나 짧다. 올해 1조달러는 미·중 통상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미국 금리 인상,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등 험난한 외부환경 속에서 이룩한 성과라 의미가 남다르다.

올해 한국 무역은 내용 면에서도 충실했다. 안정적인 수출 증가와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의 경쟁력 강화를 동반한 견고한 성과였다. 지난 8월까지 수출은 물량 기준으로 미국을 제외하고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도체는 사상 최초로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이에 힘입어 소재·부품산업도 역대 최대 흑자가 기대된다.

무역액 1조달러 달성은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경제를 이끄는 양대 축인 내수와 수출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서는 수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이 필수적이다. 국내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의 충격에 대한 안전판이자 경제 회복의 엔진으로서 수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무역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무역액 1조달러가 갖는 의미를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단 한 번이라도 1조달러를 기록해본 국가는 미국, 독일 등 주요7개국(G7)과 중국, 네덜란드 등 11개국에 불과하다. 이들 ‘무역 1조달러 클럽’ 회원들은 2017년 기준 세계 무역의 58%,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3%를 차지했다. 한국은 2011년 최초로 1조달러를 달성한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무역이 급감했던 2015년과 2016년을 제외하고 매년 1조달러를 넘겨 ‘1조달러 클럽’에 걸맞은 경제 체력을 입증했다.

그렇다고 우리 무역의 앞날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2000년대 들어 2011년까지 연평균 11%의 고성장을 이어왔지만 그때 이후 7년째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무역 1조달러 클럽 11개국 가운데 2조달러를 넘은 나라는 중국, 미국, 독일 3개국뿐이다.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처럼 한국보다 수년 앞서 1조달러에 올랐던 국가들도 아직 2조달러 고지를 정복하지 못했다.

한국 무역액이 1조달러를 넘어 무역 4강, 2조달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선진국 기업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시장에서 기존 법칙을 따르는 ‘빠른 추격자’ 자세로는 성공경험을 이어갈 수 없다. 전통 산업에 초일류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강자만이 게임의 룰을 바꾸고 시장을 독식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혁신과 성장의 주역 역시 과거부터 군림해온 공룡들이 아닌, 창업한 지 25년이 채 안 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벤처기업)들이며 이들이 선진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우리 수출의 새로운 원동력은 기존의 룰을 깨뜨리고 시장을 새롭게 정의하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기업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마음껏 도전과 모험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는 개별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 힘든 도전 비용과 리스크를 공유하고 정부는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며 기업은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통해 상호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한국은 5년 연속 ‘블룸버그 혁신 지수’ 1위에 오를 만큼 혁신역량이 충만한 나라다. 이제 무역 2조달러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