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회사 KCGI가 한진그룹 경영권을 공격하고 나섰다. 지주회사인 한진칼 주식 9.0%를 장내매수해 조양호 그룹 회장 일가(지분율 28.9%)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라선 것이다. 국내 펀드의 대기업 경영권 공격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KCGI는 ‘물컵 갑질’로 조성된 한진그룹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지주사 체제’의 빈틈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1300억원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시가총액 7조원짜리 그룹을 흔들고, 주가를 급등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사모펀드 규제도 크게 완화되면서 ‘국산 행동주의 펀드’가 속속 등장하는 모습이다.

KCGI는 배당 확대, 자산재평가, 이사회 참여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승부의 관건은 국민연금(8.3%) 크레디트스위스(5.0%) 등 주요 기관투자가와 40%에 달하는 소액주주가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달렸다. 결정은 주주들 몫이겠지만, 생각해 볼 점은 행동주의 펀드의 두 얼굴이다. 행동주의 펀드를 비난만 할 수는 없다. 대주주 전횡과 독단을 견제해 경영효율을 제고하는 순기능도 갖는다.

문제는 ‘주가 상승’이라는 당근을 앞세워 세몰이하다 갑자기 털고 나가는 ‘먹튀’ 행태가 잦다는 점이다. 많은 사례에서 기업의 장기 성장이나 고용 확대는 등한시하고,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치중하는 부작용이 목격된다. ‘주주 친화정책’으로 불리는 배당 확대 등이 절대선(善)이 아니란 점도 유념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무배당 정책’을 고집한 데서 보듯, 과도한 배당보다 수익금 내부 유보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 전략도 의미 있는 선택지다. 한진-KCGI 분쟁의 키를 쥐게 될 국민연금이 여론 눈치보기가 아니라 국민경제에 도움되는 방향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공정한 ‘게임의 룰’ 확보도 시급해졌다. 국내 기업들은 경영권 분쟁 시 자사주 취득 외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에선 보편적인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등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급변한 만큼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같은 대주주 역차별 조항이 대거 포함된 상법 개정안도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