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업 천국' 뉴욕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은 2001년 닷컴버블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위기를 맞았다. 2002~2013년 시장을 맡은 마이클 블룸버그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먼저 ‘도시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업과 엔젤투자 지원에 나섰다. 대학 내 창업기업에는 10년간 지방세와 법인세, 부동산세를 면제해 줬다.

또 뉴욕시의 각종 행정정보를 공개해 스타트업들이 활용하도록 했다. 이 정보를 가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기업은 올해 9500만달러(약 1072억원)를 유치할 정도로 성장했다. 블룸버그는 이 과정에서 “공공의 개입은 최대한 적은 게 좋다”며 민간의 아이디어를 받아 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명문 공과대학원 코넬테크(Cornell Tech)도 유치했다.

빌 드블라시오 현 시장도 사이버 보안과 생명과학·헬스케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구글과 아마존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몰려들고 있다. 구글은 실리콘밸리 본사에 이어 뉴욕에 제2본사를 따로 마련하고 2021년까지 1만2000여 명을 더 고용할 계획이다. 아마존도 제2본사 두 곳 중 한 곳을 뉴욕에 두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이 뉴욕을 선호하는 것은 인재를 확보하기 쉽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 뉴욕대, 코넬테크 등이 있고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프린스턴대, 예일대도 가깝다. 최고 금융도시여서 자본이 풍부하고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처럼 노숙자 구제 명분으로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려 들지도 않는다. 현재 뉴욕의 스타트업은 1만3000개에 이른다. 최고의 인재와 자본 인프라를 갖추고 친기업 정책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높인 결과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친기업 노선과 노동개혁 덕분에 파리가 유럽의 허브로 거듭나고 있다. 파리의 스타트업 육성 시설인 ‘스타시옹 에프(F)’에는 미국 페이스북과 한국 네이버 등이 몰린다. 삼성전자는 올해 파리에 인공지능(AI)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하듯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다. 각국의 감세 흐름과 달리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고, 규제 혁파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연구기관들이 “30년 넘은 수도권 규제만 풀어도 67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와 14만여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해도 부지하세월이다.

끊임없는 혁신으로 ‘기업 천국’을 일군 뉴욕의 변신을 보면서 《도시의 승리》를 쓴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의 명언을 다시금 떠올린다. “인재와 기술, 아이디어 같은 인적 자원을 한곳에 끌어들이는 도시가 곧 혁신의 발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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