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정보기술(IT) 매체인 미국 샘모바일과 중국 중관춘짜이센 등은 삼성전자가 신소재 그래핀을 활용해 만든 배터리를 스마트폰 차기작인 갤럭시노트10에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기존에 썼던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충전 속도가 다섯 배 이상 빠른 만큼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게 기사의 골자였다. ‘마법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을 활용한 제품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마트폰 배터리 외에도 비거리를 늘린 캘러웨이의 골프공, 음질이 또렷해진 TFZ의 이어폰 등 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그래핀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마법의 신소재' 그래핀…폰 배터리 충전 12분이면 끝! 골프공은 비거리 쭉~
흔한 흑연의 재발견

그래핀은 연필심 소재인 흑연을 가공해 만든 물질이다. 흑연을 확대해 보면 벌집 모양의 육각형 그물처럼 배열된 탄소분자가 층층이 쌓여 있는데 이 물질의 한 개 층을 그래핀이라고 부른다.

흑연이 박막 형태의 그래핀이 되면 물질의 성격이 바뀐다.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한다. 반도체 원료로 쓰이는 실리콘보다 전자의 이동속도가 140배 이상 빨라진다. 물리적 특성도 남다르다. 강도가 강철의 200배가 넘으면서도 가볍고 신축성이 뛰어나다. 빛을 대부분 통과시키는 투명한 소재라는 점도 이 물질의 특징으로 꼽힌다.

신소재 그래핀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투명하면서도 전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와 궁합이 잘 맞는다. 배터리와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요긴하게 쓸 수 있다. 군인이나 경찰들이 착용하는 방탄조끼를 티셔츠의 무게로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핀을 마법의 신소재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물질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4년이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연구원이 투명한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흑연에서 그래핀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두 연구자는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산업계에서 그래핀은 ‘게임 체인저’로 통한다. 기존에는 구현이 불가능했던 신기술들을 적용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배터리 특허를 살펴보면 그래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강도와 전도도가 높은 그래핀을 배터리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던 종합기술원 연구팀은 저렴한 실리카(SiO2)를 이용해 팝콘의 모습을 한 3차원 입체 형태의 그래핀을 대량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래핀 볼’을 리튬이온전자 양극 보호막과 음극 소재로 활용했더니 충전 용량이 45%가량 늘어났다. 충전 속도도 빨라졌다. 고속 충전기를 활용하면 12분 만에 스마트폰 배터리의 충전이 끝난다.

캘러웨이가 올해 초 선보인 ‘크롬 소프트’ 골프공도 그래핀의 새로운 활용법을 제시한 사례로 꼽힌다. 골프공은 딱딱한 외부 코어와 말랑말랑하고 탄성을 갖춘 내부 코어로 나뉜다. 캘러웨이는 골프공 외부 코어에 그래핀을 섞어 넣었다. 초경량 물질인 그래핀을 쓰면서 공의 무게를 줄이고 그만큼 내부 코어의 크기를 키웠다. 탄성을 갖춘 내부 코어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에 비거리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나노 단위 제조공정이 ‘걸림돌’

그래핀이 소개된 지 14년이 됐지만 상용화까지 이어진 사례는 의외로 많지 않다. 비싼 가격과 까다로운 제조공정 탓이다. 초기엔 가격이 문제였다. 제품에 쓸 수 있는 만큼의 그래핀을 추출하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최근엔 다양한 추출 기술이 개발됐고 그래핀의 단가도 많이 저렴해졌다. 하지만 제조공정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그래핀은 나노물질로 두께가 0.2㎚(1㎚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하다. 10개 층이 넘어가면 그래핀 고유의 특성이 나오지 않아 초박형으로 성형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 그래핀으로 부품이나 기판에 골고루 부착하는 작업도 까다롭다. 입자 간 인력이 커 얇은 막이 쉽게 구겨진다. 그래핀을 활용해 개발한 제품 중 상당수가 기대한 대로 성능이 나오지 않는 배경이다.

진성환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연구단 연구위원은 “얇은 천을 구김 없이 고루 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며 “실험실에서 제품의 샘플을 만드는 일은 쉽지만 균일한 품질의 그래핀 제품을 양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