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권력이 가져오는 갑질 심리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갑질’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으로 유명한 대한항공 오너 가족의 갑질은 2018년 물컵 사건으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게다가 갑질 당사자의 어머니 갑질까지 보도되면서 폭력의 대물림 현상을 여실히 입증했다. 폭력은 그것을 보고 겪으면서 학습이 일어난다. 심지어 폭력 피해를 당하면서도 학습이 돼 어릴 때 맞고 자란 사람이 자식에게 똑같은 폭력을 휘두르기 쉬워진다.

최근 이슈화된 양진호 회장의 경우는 엽기적인 수준의 폭력이다. 신체폭력, 언어폭력, 위협이나 협박과 같은 폭력의 여러 양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동물을 죽이고 칼로 베게 시킴으로써 상대를 학대하는 특이한 가학성까지 드러내고 있다. 직접적인 폭력뿐 아니라 간접 폭력인 모욕과 무시, 공포 조장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 방법을 고안해 상대를 괴롭혔다.

폭력은 한 번 시작하면 습관화되기 쉽다. 한 번 소리를 지르면 두 번 소리 지르게 되고 그러다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일상이 된다. 한 대를 때리고 나면 두 대를 때리고, 때리는 것이 일상이 된다. 가해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피해자 역시 습관화가 일어나 이에 쉽게 순응한다. 익숙해진 폭력에 둔감해지고 가해자는 점차 더 큰 폭력을 행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폭력은 쓰면 쓸수록 그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그래야 효과도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괴롭히는 양상이 다양해지고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상실한 채, 상대의 고통 수위를 높이는 것에만 집중한다.

상하 관계가 분명한 조직 안에서 이런 갑질 폭력은 쉽게 일어난다. 특히 오너와 같은 절대 권력을 지닌 가해자일수록 폭력 행위가 묵인되기 더 쉽다. 해고 등 더 큰 피해가 두렵기에 피해자는 반발이나 반항을 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순종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그 누구도 자신을 거역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런 믿음은 실제 자신이 가진 권력을 과신하게 한다. 자신의 권력은 영원할 것이고 모든 법 위에 있다는 착각마저 하게 된다. 또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 행위가 전적으로 상대의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설사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윤리적인 잣대나 법망을 피해갈 것이라고 과신한다.

이와 같은 과신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권력으로 인한 ‘도덕적 명확성(moral clarity)에 대한 인식’이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자신의 권력이 가장 컸던 때를 계속 상상하게 한 집단과 그냥 기분 좋았던 때를 상상하게 한 집단으로 나누고,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게 했다. 딜레마 상황이란 옳고 그름의 도덕적 판단이 모호한 상황을 말한다. 모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상상한 집단의 사람들이 훨씬 더 명확하게 답변했다. 다른 집단에서는 더 많이 “글쎄요”라고 했으나 권력을 상상한 집단은 “옳다” “아니다” 이분법적으로 답했다. 상상한 권력임에도 권력을 가지면 흑백이 분명해진다.

이런 ‘명확성’은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면 이에 대해 엄격하고 단호해진다. 작은 실수에도 상대가 엄청나게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차 없는 처벌을 가한다. 상대에 대한 죄책감은커녕 잘못을 처단했다는 정의감까지 갖는다. 때로는 그런 과정에서 타인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만족감과 쾌감 또한 느낀다. 특히 자신의 행동은 조직을 위한 것이라는 합리화가 일어나면서 이런 엄격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자신이 너무나 잘하고 있다는 권력자의 오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우리 모두 지니고 있다. 아무리 작은 권력일지라도 주어지는 순간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용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명확하고 엄격한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크든 작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기에 조직 내 지위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은 아닌지 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차 자신을 오만하게 만드는 권력의 힘을 늘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