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또 '동물국회'
2008년 12월18일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회 회의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 문을 걸어잠근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상정하려 하자 통합민주당은 전기톱과 해머, 소화기로 회의장 출입문을 부쉈다. 이 장면이 주요 외신에 보도되면서 한국 국회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샀다. 대한민국 국회에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은 흔히 봐 온 장면이지만, 18대 국회(2008년 6월~2012년 5월)가 유독 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회의장에서 최루가스 투척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책상에 올라가 발을 구른 이른바 ‘공중부양’은 국회폭력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집단 난투극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 반성으로 탄생한 게 ‘국회선진화법’이다. 이 법은 국회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을 얻어야 국회의장이 법안과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고, 국회 폭력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2012년 5월 19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한나라당이 바뀐 이름)이 적극적으로 나서 처리됐다.

그러나 이 법은 5분의 3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소수당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는 폐단을 낳았다. 국회는 ‘식물국회’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법안 처리율은 18대 국회 26.9%에서 19대 국회 15.0%로 뚝 떨어졌다.

여야 간 합의를 하지 못하면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보니 19대 국회에선 ‘주고받기식 흥정’이 횡행했다.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야당이 요구하는 법안을 끼워 넣는 것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데 난데없이 세월호특별법이 등장하는 식이었다.

국회 비효율이 문제가 되면서 소수 야당에서조차 “차라리 동물국회가 낫다”(2016년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는 말까지 나왔다. 국회선진화법 처리에 앞장선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된 뒤 “이 법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고 하소연한 것은 아이러니다. ‘자승자박(自繩自縛)’꼴이 된 새누리당은 2016년 초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나섰다가 그해 4월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슬그머니 없던 일로 했다.

우리 국회가 동물국회, 식물국회 소리를 듣는 근본 원인은 타협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막말 공방 끝에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적 수준을 다시 보여주는 장면 같아 씁쓸하다. “나가서 붙자, 한 주먹도 안 되는 게”(장 의원), “나가자, 쳐봐라”(박 의원). 듣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언어다. 동물국회가 또 도래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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