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지정학적 위험'이 밀어올린 油價…여유생산능력도 변수
국제 원유가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중동산 두바이유의 배럴당 평균 가격은 올 1분기 64달러, 2분기에 72달러, 3분기에 74달러를 기록했고 10월에는 79달러를 기록했다. 1~10월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71달러로 지난해 연평균 가격인 53달러에 비해 34% 상승했다. 올해 국제 유가가 오른 요인으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세계 석유 수요의 견고한 증가세, 미국의 대(對)이란 원유 수출 제재 부활 등 지정학적 불안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유가의 추가 상승을 억제한 요인은 미국 원유 생산의 지속적인 증가와 6월에 열린 OPEC 총회의 감산 완화 결정 등이다.

올해 유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OPEC의 과도한 감산이었다. OPEC은 지난해 1월부터 하루 118만 배럴 규모의 감산에 들어갔다. 그런데 OPEC의 올 상반기 감산량은 하루 184만 배럴로 감산 준수율이 156%에 달했다. OPEC의 감산 준수율은 베네수엘라 앙골라 알제리 등 경제 위기를 겪는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정정 불안과 함께 원유 생산을 위한 투자 및 운영자금 부족, 석유 인프라 노후화로 원유 생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은 지난해 12월 하루 170만 배럴에서 올 9월 하루 120만 배럴로 줄었다. OPEC의 과도한 감산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대부분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위기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5월8일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하고 180일의 유예기간을 거쳐 11월5일부터 이란의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OPEC의 원유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는 더욱 고조됐다.

OPEC은 6월22일 총회에서 과도한 감산 준수율을 100%로 낮추는 감산 완화(증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감산 완화를 위한 합의사항에 산유국별 증산 할당량 등 세부 내용에 관한 언급이 없어 예상되는 증산 규모는 불확실했다. 실제로 7~9월 OPEC의 감산 준수율은 128%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뉴스의 맥] '지정학적 위험'이 밀어올린 油價…여유생산능력도 변수
3분기까지 日 40만 배럴 공급과잉

세계 석유 수요는 세계 경기 확장세에 힘입어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그중에서도 중국과 미국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 올해 세계 전체 석유 수요 증가분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미국의 셰일오일을 중심으로 한 비(非)OPEC 국가의 원유 생산이 유가 상승에 힘입어 급속히 늘어남으로써 세계 석유 수요 증가와 OPEC의 감산 물량을 모두 상쇄할 수 있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세계 석유 수급 밸런스는 지난해 하루 40만 배럴 초과 수요였지만 올 3분기까지는 하루 40만 배럴 공급 과잉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올해 유가에는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일정 부분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즉 실제 수급 밸런스와는 무관하게 미국의 이란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원유 공급이 위축될 것이라는 시장의 불안 심리가 유가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향후에도 국제 유가는 석유 수급은 물론 세계 경제 상황, 달러화 가치, 지정학적 사건, 기후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유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우선 세계 석유 수요 증가세는 점차 둔화할 전망이다. 내년 석유 수요는 하루 약 13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증가분 추정치인 하루 150만 배럴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7%로 올해 추정치와 동일하지만 석유 수요 증가를 주도하는 중국의 성장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의 유가 상승에 의한 소비 억제 효과와 더불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가 신흥국 통화에 강세를 보이는 것도 석유 수요 증가세를 둔화시키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의 수요 증가분은 세계 수요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텍사스주와 뉴멕시코주에 걸쳐 있는 미국의 주요 셰일오일 생산지 퍼미언(Permian) 분지의 송유관 부족은 추가적인 원유 생산 확대를 제약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내년 하반기에 멕시코만 연안으로 연결되는 신규 송유관이 가동될 예정이므로 원유 수송 애로는 해소될 것으로 관측된다. 내년도 비OPEC 국가의 전체 석유 공급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증가와 캐나다, 러시아의 증산으로 올해보다 하루 180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비OPEC 국가의 공급 증가분은 내년에도 세계 수요 증가분을 모두 상쇄하고 남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므로 OPEC의 생산이 올해 수준을 유지한다면 내년 세계 석유 수급은 공급 과잉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OPEC이 베네수엘라의 추가 생산 감소분과 미국의 이란 제재에 따른 이란의 추가 생산 감소분을 보충하면서 올해만큼 생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달러화 강세에 수요 증가세 둔화

미국 국무부는 이란산 원유 수입국에 제재 유예기간이 끝난 뒤 이란으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한시적으로 한국 인도 등을 포함한 8개국에 대해 제재를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 제재를 처음으로 시작한 2012년에 이란 원유 수입을 ‘상당량’ 감축한 국가에 지속적으로 제재 예외를 인정한 것과 비교해 제재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사례에 비춰 이란의 생산 감소분은 하루 100만 배럴을 훨씬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네수엘라의 추가 생산 감소분도 내년에 하루 약 3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IEA는 9월 기준으로 OPEC이 보유한 여유 생산능력을 하루 210만 배럴로 추정했다. 여유 생산능력은 통상 3개월 이내에 생산을 시작해 상당 기간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설비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중 150만 배럴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가 여유 생산능력을 활용해 이란과 베네수엘라 양국의 추가적인 생산 감소분을 충당할 수는 있다.

여유생산능력 가장 많이 줄어

그러나 2014년 유가 폭락에 의한 설비투자 부진으로 이미 부족한 상태인 OPEC의 여유 생산능력이 증산으로 더 축소될 경우 국제 석유시장은 극도의 불안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OPEC의 여유 생산능력이 이 정도로 줄어든 때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유 생산능력 부족은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이를 대체해서 공급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원유 구매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시장에서 발생하는 조그만 사건과 사고에 의해서도 유가는 곧바로 상승한다.

결론적으로 국제 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여유 생산능력 보유국의 증산으로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위험 요소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물론 석유 수요가 예상보다 더 증가하고 지정학적 사건에 의해 예기치 못한 공급 차질이 발생한다면 유가는 더 상승할 것이다. 반대로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돼 석유 수요 증가폭이 예상보다 줄어들고 미국의 셰일오일 등 비OPEC 국가의 공급이 예상보다 더 증가하면 유가는 하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