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가치 제고 활동에 보상하는 ICO
한국은 암호화폐 거래까지 범죄 취급
분산형 디지털 신질서에 합류 못하면 안돼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전문가 포럼] ICO 규제는 아날로그적 시대착오

지난 9월 정부는 ‘벤처기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숙박업, 건물임대업, 노래방, 미용실을 벤처 인증 대상에 포함했지만 암호화폐거래소는 제외했다.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첨단 분야가 한국에서는 술집, 나이트클럽, 도박장과 같은 취급을 받은 셈이다.

10월에는 한때 세계 1위급 암호화폐거래소였던 빗썸이 싱가포르 기업에 매각됐다. 빗썸과 함께 3인방을 구성했던 업비트와 코인원도 해외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던 암호화폐거래소들이 정부의 시대착오적 규제 여파로 한국을 탈출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는 기술혁신으로 출발해 금융혁신으로 발전하면서 대세가 된다. 세계사의 전환점이 된 16세기 대항해시대는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 포르투갈의 인도 항로 개척으로 시작됐다. 당시 신생국 왕실은 전폭적 지원의 대가로 큰 이익을 얻으면서 귀족들이 동참해 사업 규모가 커졌지만 가난한 평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후발 주자인 네덜란드는 해외 개척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회사 제도를 창안했다. 출자금액만 책임지는 유한책임 구조로 위험을 분산해 투자자의 저변을 넓혔다. 저소득층 일반인도 소액을 투자하면서 고수익 대형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시민들이 주도하는 근대 세계 형성의 기폭제가 됐다.

19세기 미국의 철도시대는 JP모간의 채권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철도와 같은 인프라 사업은 초창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회수하는 구조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어렵고, 주식 발행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장기 자금인 회사채를 발행해 돌파구를 열었다. 이후 미국에서 철강, 전화, 전기, 화학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굴뚝기업이 대거 출현했다.

1980년대에 본격화한 정보화 혁명의 초창기 투자자금은 정크본드의 황제 마이클 밀켄의 혁신에서 비롯됐다. 신용도가 낮아 은행 차입이 어려운 벤처기업이 주요 고객이었다. 이 덕분에 미국 서해안 지역에서 태동하던 유선TV(CATV), 컴퓨터, 무선전화 등 정보통신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후일 실리콘밸리로 발전했다. 저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미래충격》(1990년)에서 밀켄을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경쟁전략을 지원해 정보산업으로의 권력이동을 촉진하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21세기 디지털 플랫폼 경제는 암호화폐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라는 자금조달 방식을 선보였다. 플랫폼 사업 성공의 핵심은 활동성 참가자가 집결해 형성하는 생태계의 역동성에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시대의 주식-채권 자금조달 구조는 플랫폼 사업 초창기부터 제품과 서비스에 접근하면서 성공 기반을 형성한 참가자에게는 보상하지 않는다. ICO는 플랫폼에 참여해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공헌자에게 코인으로 보상한다. 예컨대 차량공유 사업인 우버의 성공에서 기여도가 높은 사업 초기의 운전자와 고객들에게 코인을 배분하고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개념이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벤처캐피털에 지분을 양도하지 않고 잠재 소비자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조달하는 장점이 있다.

ICO는 주주나 채권자, 임직원이 아니어도 누구든 가치를 높이는 활동에 보상하는 오픈형 인센티브 구조이기에 플랫폼 경제에서 각광받는다. 미래산업을 육성하려는 선진국들이 전향적으로 접근하는 배경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모든 형태의 ICO가 금지돼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작 핵심인 암호화폐 거래와 ICO는 범죄처럼 백안시한다. 마치 ‘수영을 권장하지만 몸에 물을 묻히면 처벌하겠다’는 모순적 상황이다. 유선전화, 공중파 방송, 은행이 상징하는 중앙집중형 아날로그 구질서가 퇴조하고 플랫폼, 유튜브, 암호화폐가 주도하는 P2P(peer to peer) 분산형 디지털 신질서의 대세에 합류하지 못하면 미래는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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