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은 안 보이는 '라스트 마일' 경쟁
버드(Bird), 라임(Lime), 스킵(Skip), 스쿠트(Scoot), 스핀(Spin)….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1인용 운송수단으로 떠오른 ‘전기스쿠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다. 버드는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전기스쿠터 공유 서비스를 시작한 뒤 불과 1년 만에 22개 도시로 사업을 확대했다. 투자 유치액은 4억달러(약 4570억원)에 이른다. 버드는 기업가치 20억달러를 넘는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라임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기업가치 11억달러에 달하는 또 하나의 유니콘이다. 미국 65개 도시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지로 사업을 확대했다. 글로벌 이용자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전기스쿠터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이용할 수 있다. 30분가량 쓰는 데 2~3달러(2280~3430원) 정도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시속 20~24㎞로 달릴 수 있고, 헬멧 착용이 의무화돼 있다. 매연을 뿜지 않는 ‘친환경’ 이동수단이다.

전기스쿠터가 실리콘밸리 지역을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자 우버, 리프트 등 승차 공유 업체들도 관련 사업에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우버는 지난 4월 인수한 전기자전거 업체 점프를 통해 샌타모니카에서 전기스쿠터 사업을 시작했다. 리프트는 샌타모니카, 덴버에 이어 워싱턴DC에도 400대가량의 전기스쿠터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전기스쿠터는 시민들의 ‘라스트 마일’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뒤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를 전기스쿠터가 채워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출발지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모든 운송수단을 책임지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업체들의 라스트 마일 선점 경쟁으로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이른바 ‘차저(충전해주는 사람)’다. 시민들이 이용한 전기스쿠터를 매일 수거해 충전한 뒤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업체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

전기스쿠터 사고가 몇 건 발생하면서 안전문제 등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미국 도시들은 전기스쿠터 서비스를 허용하는 추세다. 교통체증을 완화하고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버드, 라임과 같은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국내 도로교통법상 전기스쿠터, 킥보드 등 시속 25㎞ 미만·중량 30㎏ 미만의 개인형 이동수단(퍼스널 모빌리티)은 ‘도로’에서만 달려야 한다. 인도와 자전거도로에서 타면 불법이다. 시속 25㎞ 미만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달리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이 45개 주에서 관련 법규를 마련해 자전거도로 주행 등을 허용한 것과 대조된다.

최근 한국에선 ‘카풀(승차 공유)’ 논란이 뜨겁다. 카카오 등이 카풀 서비스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생존권’을 내세운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공유경제 활성화를 의제로 내세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모빌리티 경쟁이 달아올랐다. 미국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중국(디디추싱), 싱가포르(그랩), 인도네시아(고젝) 등 지구촌 곳곳에서 카풀 서비스가 뿌리를 내렸다. 이제는 전기스쿠터, 전기자전거 등 라스트 마일 싸움이 한창이다. 그러나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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