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내년부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연간 1조원가량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카드사들에 또 비상이 걸렸다. 문재인 정부가 이미 내놓은 기존의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국에 더 줄이라고 하니 “사실상 수수료를 받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는 비명까지 나온다. 이대로 가면 카드업계의 매출 급감으로 조만간 대규모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수수료를 내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가뜩이나 포화된 시장에서 경쟁하는 카드사들 입장에서 보면 마케팅 축소는 “그냥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부가 이처럼 자꾸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이라는 관측이다. 가계의 지출부담을 줄여 가처분 소득을 높여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강제적인 가격 인하를 한들 소비자에게 개별적으로 돌아갈 혜택은 거의 ‘푼돈’에 불과하다. 반면 이로 인해 서비스가 나빠지고 시장이 쪼그라들어 산업이 망가지면 그 손실은 생산자·소비자 모두의 몫이 되고 만다.

정부의 가격 통제로 위기에 내몰린 건 카드산업만이 아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툭하면 들고나오는 통신요금 인하 압박 때문에 통신산업도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식이면 5세대(5G)서비스 상용화 시대가 펼쳐진다고 해도 제대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전기료도 마찬가지다. 인상 요인이 쌓여가는데도 정부는 “전기료 인상은 없다”고 말한다. 전력산업이 혁신을 시도하기는커녕 적자 수렁으로 빨려들어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정부가 육성하겠다는 소프트웨어 등 지식재산 분야까지 가격 통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걸핏하면 ‘원가 공개’ 압박이 가해지는 업종들까지 감안하면 가격 통제가 만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정부가 직접 사업을 벌이거나 공짜 서비스를 남발해 민간기업들을 몰아내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존 산업의 혁신은 물론이고 신산업의 육성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