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기적의 돌' 50년

1983년 2월7일 밤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손에는 100쪽 분량의 반도체 사업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첨단 반도체 중 일본이 미국보다 앞선 분야는 메모리’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일본이 미국을 앞설 수 있다면 우리도 가능하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손재주가 좋아야 하는데 젓가락에 익숙한 한국인의 손재주는 일본인과 다를 게 없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작업실도 걱정이 없었다. 한국인은 방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지 않는가. 이 회장은 날이 밝자마자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결정 지은 ‘2·8 도쿄 선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반도체산업을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남은 문제는 기술이었다. 삼성에 기술을 전해줄 곳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샤프의 연수 허락을 받아냈다.

이 회장은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특공대’로 파견했다. 샤프 측은 기술 유출을 우려해 이들의 행동을 극도로 제한했다. 연수단원들은 허드렛일을 하는 틈틈이 현장을 눈에 익혔다. 주요 설비 길이는 발걸음 수로 쟀다. 화장실 대화를 엿들으며 조각 정보를 모았다. 낮에 보고 외운 것을 밤에 모여 노트에 취합했다.

어깨 너머로 설계·제조 기술을 배운 이들은 귀국해 반도체산업의 주역이 됐다. 이들이 함께 돌아온다는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은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들 정신 나갔구먼! 같은 비행기로 귀국하겠다니 무슨 소리야! 한 사람씩 다른 비행기를 타고 와!” 사고라도 나면 애써 배운 기술을 다 잃지 않느냐는 걱정이었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그해 12월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일본과 10년 이상 차이 났던 기술력을 6개월 만에 따라잡았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외국계 하청공장만 있던 열악한 환경에서 독자 기술 개발로 승부를 건 삼성의 쾌거였다.

이 회장은 ‘2·8 도쿄 선언’에 앞서 10년간 해외 전문가들을 만나고 수백 권의 책을 탐독했다. 1974년에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기초 체력을 다졌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세운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와 경쟁하며 기술 발전을 이끌었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이달 단일품목 최초로 연간 수출 10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누적 수출도 1조달러를 돌파했다. 1994년 100억달러를 수출한 지 24년 만이다. 100억달러 수출 기념일인 10월25일은 ‘반도체의 날’이다. 어제 기념식에는 맨주먹으로 ‘기적의 돌’을 만든 원로 기술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보릿고개에서 출발한 한국 반도체산업의 성장사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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